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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사진일기

친구야 고맙다

by Gomuband 2010. 6.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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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야...일단 고맙다.
부탁한 걸 들어줘서...
날 잡아 낚시가기로 한 약속, 꼭 지키마.

볕이 이렇게 좋은 게 좀 이상하다 싶었어.
세계 곳곳에선 하루가 멀다고 화산이 터지고
온갖 포복절도할 사건이 매일 뉴스난을 도배하고 있었지만
하느님께선 우리나라에 투명한 하늘을 내려주셨지.
하마터면 노년에 시실리섬에 가서 살고픈 마음이 흔들릴 뻔했지.



그 쨍한 햇볕 덕분에 고운 꽃들이 곳곳에 피어났더구먼.



아~ 물론 하루하루의 일과를 게을리 한 건 아냐.
밤과 낮이 뒤바뀌어 혼란을 겪고 있었을 뿐이지.
정 잠이 안 올 땐 막兄의 손길이 그리워진 건 사실이지만...



작년에 옆집 신축공사할 때.
우리 건물에 사는 몰상식한 어떤 분과 옆집 건축주가 맘을 모아
코딱지만한 우리 건물 마당에서 버티고 있던 나무를 베어냈어.
사진에 나온 반 토막 나무 옆엔 꽤 큰 은행나무가 있는데
윗부분 가지치기한 것도 모자라 그 나무도 잘라버리려고 하기에
내가 그랬지.
'공사하다가 우리 집 무너지면 어떡할래? 여기 지반이 약하니 맘대로 해봐.
이 나무가 지금 간신히 받히고 있는 거야.'
그동안 반 토막 난 나무가 불쌍해서 눈길을 주지 못하고 지나다녔는데
아니 이놈이 신통하게 새 순을 내밀었지 뭐야.
애썼다...나무야...정말 애썼어.



기다리던 6월 2일이 밝았어.
밤에 잠이 안 오기에 새벽까지 뒤척이다 다섯 시에 잤지.
일어나 보니 해가 중천에 올랐더군.
내 머리론 도저히 외울 수 없는 여섯 명의 후보들...
이름을 적은 종이를 챙겨 투표소로 갔어.
어? 젊은이들이 꽤 보이네.
음...심상치 않은데...

이번에 얼마나 빡시게 구라를 풀었으면
고향이 쩌그 남쪽인 우리 동네 김밥집 아주머니께서도
투표를 포기하고 있으시더라고...
이미 진 걸 뭐 하러 하느냐고 그러시는 거야.
역시 TV의 힘은 위대해.
그러니 바보상자라고 하지.
생전 무슨 공부를 하나...책을 읽나...
김밥 말아 코흘리개 아이들 키우면서도 아무 생각이 없으시니...
아주머니! 아줌마네 애들이 무상급식 혜택을 받으면
한 달에 좋은 책 열 권은 넉넉하게 살 수 있어욧!!!



번개같이 조계사로 넘어가니...
문수 스님의 유서가 떡 하니 걸려있는 거야.
유서와 투표와 축구공...
참 복잡한 날이더군.



사람들이 좍~앉아 모두 앞만 보고 있어서
혼자 분향하기가 좀 뭐시기 했지만...
차분하게 좋은 곳으로 가시기를 빌어드리고 나오는데
많이 뵌 분들이 오시지 않겠어?



설명 안 해도 어떤 분들인지 잘 알겠지?
위원장께서는 따로 오셨다가 함께 앉으신 거고...



이렇게 모이시기도 어려운 일인데...

조계사 건너편에선 이 스님께서 문수 스님의 유서를 바라보고 계셨다네...
개인적으론 문수 스님이 원하시는 세상에 한걸음 다가가게 되어 기뻐.
같이 웃으셔야 할 스님이 이젠 안 계시다는 것만 빼면...

골목을 돌아 목인갤러리로 왔어.



6월 2일부터 8일까지 목인갤러리에선 강혜련님의 전시가 열리고 있어.
염색하면서 틈틈이 그린 초상화를 전시하는 거야.
작품이 별로 없다고 걱정하시기에 내가 아이디어를 드렸지.
'이번엔 혜련님을 전시하세요.'
액자에 염색한 천을 두르는 방법도 알려드리고...
가난한 예술가가 꼭 비싼 액자를 할 필요는 없는 거야.

여기선 이생진 선생님을 뵈었네.
그리운 성산포....아....성산포...
시간 나면 함 가봐...고운 마음이 기다리고 있어.



난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어르신들이 점점 노쇠하시는 게 걱정이 돼.
나이 드시면 몸이 약해지는 게 정상적인 거지만
그분들이 지니셨던 빛나는 가치가 세월에 묻혀 퇴색 될까 봐 두려운 거야.



전시 뒤풀이 하는 동안 계속 문자가 오더군.
'형! 우리가 이길 것 같아요!'
가슴이 벌렁거려 술잔을 든 손이 마구 떨렸어.
집에 들어가다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여의도에 내려 또 한 잔!



자~일장춘몽은 끝나고...
오늘은 자인제노에서 서기문님의 전시 오픈이 있는 날이야.
어제의 알콜 기운이 몸에 가득했지만
앰프까지 챙겨 메고 효자동 길을 걸어 올라갔지.
콩국수로 속을 달래고 자인제노 앞 골목에 앉아 손을 풀었지.
자전거 타고 나온 홍제동 친구들과 맛집 이야기도 하고...
서기문님은 '미술사 인물소환과 동행시리즈'라는 전시를 10일까지 하고 계셔.
재미있는 그림이 많으니 여기도 꼭 들려줬으면 좋겠어.



그동안 모두 수고 많았어.
마음 아픈 날도 있었고
애태운 시간도 있었고...
바란 걸 다 얻지 못했지만
이번에 얻은 건 이거 아닐까?
'할 수 있다고 믿으면 꼭 이뤄진다!'

말로만 애국애국하지 말고 실천을 해봐.
우리 국민이 가진 역량은 절대로 적지 않아.
누가 평소에 광장에 나가서 투쟁하라고 했니?
몇 년에 한번 오는 투표 때 찬찬히 살피고 투표하자는 것뿐이야.
그래...이해해...내게 닥치지 않은 일에 무관심할 수 있는 것도 사람이지...

끝으로 이번에 당선된 분들께 윗사진을 선물로 드리고 싶어.
'항상 여러분 곁에는 당신을 지켜보는 무서운 국민이 계십니다.'란 말씀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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