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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사진일기

대둔도에서 함평까지

by Gomuband 2009. 1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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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고무兄은 여러 일에 매진하여 심신이 피폐하였다.
뭐 돈 버는 일이 쉬운 게 있을까? 당연한 거지...심신이 피폐할 것 까지야...
하지만 베짱이가 갑자기 많은 일을 마무리했으니 쪼깨 팍팍했을 것이여...
새벽 한 시가 넘어서야 유랑兄의 신곡 믹스를 마치고 남행에 필요한 짐을 쌌다.
항상 고속버스(그것도 일반 고속버스) 예찬론자인 고무兄이지만
목포로 심야에 출발하는 버스가 없는지라 친히 애마를 끌고 삼백사십 킬로미터의 대장정에 나섰다.
아니 이게 웬일? 눈발이 날리네. 이러다 내장산 근처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거 아냐?
과연 아침에 배가 뜰까? 배 안 뜨면 뭐하지?
온갖 요망한 상상을 하면서 고속도로에 오르니 눈발이 차츰 잦아들었다.

아침 여섯 시까지 목포에 도착하려면 한 시간에 일백십 킬로를 달려야 했다.
평소에 전국 어느 고속도로건 팔십 킬로미터를 넘기는 법이 없는 고무兄에게 일백십 킬로의 속도는 무리였으리라. 얼마나 눈을 부릅뜨고 달렸을까...
시간이 빠듯해도 고속도로 휴게소의 우동을 좋아하는 고무兄은 오늘도 어김없이 우동을 먹기로 했다.
이쒸~튀김우동으로 먹을걸...유부만 잔뜩 들어간 미지근한 우동...정말 맘에 들지 않았지만
고춧가루를 듬뿍 풀어 속을 달랬다.

예정대로 여섯 시에 목포에 도착!
톨게이트에서 만 원짜리 한 장만 내미는 고무兄에게 돈을 더 달라고 꿀렁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돈을 더 달라고라? 화물차 심야 할인 안 해줘요?"
"그 제도 없어졌어요..."
이런 썅! 장난하냐? 애들 사탕 주듯 깎아줬다 없앴다 해?
하긴 처음부터 수상했다해 우리 살람 그럴 줄 알았다해~~

목포여객터미널은 이층에서 개찰을 하고 다시 밑으로 내려가 배를 탄다.
워미...그 많은 짐을 들고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가라고라?
정말 정신이 있는 겨 없는 겨?
설계를 누가 한 겨? 평소에 짐 안 들고 다니는 눔이 했겄제?
여객터미널 2층 시인 김성호의 친구네 약국에 들른 고무兄은 몸이 으실으실하여 배를 못 타겠다고 엄살을 부려 결국 따끈한 쌍화탕과 보신환을 강탈했다.
혹시 반 병이라도 남겨줄까 싶어 옆에서 보고 있던 화가 조병연이가 한 입에 털어 넣는 보신환을 가로채려 손을 뻗었으나 이미 보신환은 고무兄의 식도를 타고 넘어갔고 무시무시한 고무兄의 앞 이빨에 검지가 싹둑 잘리고 말았다.
"으흑~성님 손가락을 끊어버리면 어쩐다요? 너무 하시오 잉?"
"아따~남은 손가락이 네 개나 있응게 그림 그리는 데는 지장이 없을 것이지라~"
시인 유종이가 고무兄이 씹어 삼키려던 손가락을 황급히 꺼내어 병연이 손에 바늘로 얼기설기 꿰매 붙여주었다.
"이게 뭐요 성님! 손톱이 손바닥 쪽에 있으면 워쩐다요?"
때마침 후딱 배를 타라는 안내방송 소리가 울고불고 생난리 치는 병연이의 악쓰는 소리를 눌렀고
우린 후다닥 선창으로 달려 내려갔다.



쾌속선이란 눔은 바다 위를 야멸치게 달려 빠른 시간에 사람을 실어나르지만
고무兄은 갑판에 나가 담배를 피우지 못한다는 이유로 꼭 일반 배를 타자고 했다.
먼바다로 가는 배편은 이제 쾌속선밖에 없으니 행사 마치고 홍어회 사드린다는 공갈을 치고서야 간신히 고무兄을 배에 태울 수  있었다.
하늘이 보였다 바다가 보였다 하는 롤링이 심한 날도 술 한 방울 엎지르지 않고 고운 자태로 자세를 유지하는 고무兄은 오늘도 편안한 상태로 코를 골기 시작했고 주변 사람들은 동그랗게 자리를 비우고 멀리 도망가버렸다.
비금~도초를 지나 흑산도 앞바다에 다다르자 고무兄이 부시시 일어났다.
배가 속도를 줄이는 걸 눈치챈 모양이었다.
"지금 내려야 할 것 아녀? 싸게 싸게 움즉여 이 썩을 눔들아!~"
자기 짐만 홀랑 들고 갑판으로 나간 고무兄은 잠시 멈칫했다.
배가 부두에 대어져 있는 게 아니라 작은 종선이 대구리를 쾌속선 갑판에 붙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썩을~써커스하라는 거여?"
긴급생존장비가 가득한 배낭을 메고 한 손엔 십 킬로가 넘는 앰프를 들고 육 연발 클래식 기타를 오른쪽 손에 든 고무兄이 몸을 날려 순식간에 종선에 오르자 많은 사람이 손뼉을 치며 고무兄의 뒤를 따랐다.
"역시 역전의 용사다운 모습이여...장군께서 워찌 여기까지 납셨다냐?"
"싸게 싸게 엄니한테 전화드려, 오늘 우리 마을에 경사났응게~"
뱃머리에 우뚝 서서 호령하는 고무兄을 본 쾌속선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렸으며 사람들의 통곡 소리에 무슨 일인가 싶어 달려나온 쾌속선 항해사는 감격의 도가니에 빠져 항해 마치고 혼자 마시려고 몰래 숨겨두었던 진도 홍주를 꺼내어 고무兄에게 진상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여러 마을을 들러 드디어 대둔도에 상륙한 고무兄 일행은 '우럭의 고장'이라는 팻말을 보고 회심의 미소를 금치 못했다.
"그럼 그렇지. 우리가 제대로 짚은 것이여. 오늘은 우럭 튀김으로 가잣!"
고무兄은 갑자기 신이 나서 리어카에 짐을 대충 싣고 학교로 마구 달려갔다. 그 와중에 떨어져 부서진 디지털 카메라가 일흔여섯 대, 빔프로젝터가 여덟 대라고 훗날 사관이 적었다.



흑산 동초를 접수한 고무兄 일행은 아이들과 놀기 전에 일단 교무실 수색을 시작했다.
혹시 아이들에게 나쁜 영향을 주는 책들이 꽂혀 있지 않나...점검하던 고무兄은 많은 주입식 교육교재와 식민사관과 왜색에 철저히 물든 교가를 발견했고 즉시 분서갱유를 재연하라는 명령을 내렸으나 주방에서 풍겨 오는 미역국 냄새에 명령을 거두고 이번 한 번만 용서하기로 했다.
항상 그랬듯이 이번 행사도 시인 박관섭 장군이 거사를 주도했으며 고무兄이하 다른 장수들은 옆에서 박장군의 주입식 교육 파괴공작을 도왔다.
특히 고무兄은 예쁘고 시집 안 간 이모가 있거나 홀로 되어 외로움에 지친 과부가 있는 집 아이들을 편애했으며 이따가 학교 파하고 쵸코파이를 사주겠다는 감언이설로 아이들을 홀렸으나 압해도의 여전사 도경여사와 제주도의 투사 설이공주가 벌이는 방해공작으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아이들은 관섭장군의 영도에 따라 오랜 주입식 교육에 시달린 때를 벗고 향기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시와 그림을 전공한 장군들과 함께 시를 짓고 시화를 그리고 노래를 만드는 틈틈이 축구도 하고 복도에서 장난도 치고 오목도 두고 칠칠게임도 하고 화장실도 가고 친구와 싸우기도 하였지만, 유치원부터 육 학년에 이르는 열 네 명의 학생들은 형제처럼 서로 아끼고 돌보는 모습을 보여주어 고무兄의 마음을 훈훈하게 하였다.
다섯 시가 다 되어 일정이 끝났고 수리에 살지 않는 아이들은 산을 넘어 오리와 도목리로 흩어졌다.
산길로 접어드는 아이들을 보고 있던 고무兄은 저녁에 아이들과 함께 놀지 못함이 섭섭하여 마음이 무거웠다. 하지만 우럭 튀김을 든 부녀회장님이 나타나자 고무兄의 얼굴엔 화색이 돌았으며 어떤 변고가 날까 봐 전전긍긍하던 다른 장군들도 그제야 허리를 폈다.



이장 대행께서 마을에 방송을 서너 차례 하고 나니 어르신들이 한 분 두 분 경로당으로 올라오셨다. 관섭장군은 마을 어르신들께 마을 내력을 여쭈었고 병연장군은 들은 이야기를 커다란 마을 지도에 옮겼다.
어르신들이 거의 다 올라오시자 곧 술상이 차려지고 작은 놀이판이 벌어졌다.
고무兄은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 이상한 곡을 한 곡 먼저 연주하고 차례로 마을 사람들에게 노래를 시키기 시작했다. 개중에는 신나게 춤도 추며 노래를 부르는 어르신도 계셨지만 언제 고무兄이 자기를 지목할지 몰라 불안한 마음이 든 사람들은 고무兄이 담배 피우러 밖에 나간 사이에 뒷문으로 줄행랑을 쳤다. 고무兄은 곧 장수들을 풀어 도주한 사람들을 모조리 찾아 경로당 마당에 대령하라는 명령을 내렸지만 내일도 새벽부터 일 나가실 어르신이 많다는 부녀회장님의 말씀을 듣고 화를 가라앉혀 술상을 새로 보고 설이공주의 노래를 듣기로 했다.
유종장군과 도경여사가 잠이 들자 나머지 장군들은 고무兄의 조선상고사 강의를 들었으며 삼국시대 역사를 다시 써야 한다는 고무兄의 일갈에 수리 바닷가의 우럭들이 벌벌 떨고 잠을 자지 못했다는 전설이 아직도 전해진다.



날이 밝자 유종장군은 엊저녁에 먹다 남은 뼈다귀 된장국에 속풀이 라면을 끓여 고무兄을 기쁘게 했다.
열한 시부터 발표회를 하기로 했기에 서둘러 학교로 가 어제 만든 노래들을 연습하고 아이들에게 시낭송 연습을 시켰다. 목포로 일 보러 나간 아이가 네 명이나 되어 발표회를 함께 하지 못함이 아쉬웠지만 다들 또렷하고 밝은 얼굴로 자기 책임을 다했다.

언제나 그랬듯이 단체 사진을 찍으며 고무兄은 또 헛소리를 했다.
"자~하나 둘 셋에 모~기 합시다."
"하나 둘 셋! 모~기."
"...찰칵."
"어? 기~할 때 찍어야지. 다시!"
"자~하나 둘 셋에 와이키키 합시다."
"하나 둘 셋! 와이키키~"
"...찰칵."
"이런 쒸~한 번만 더 실수하면 물에 던져 버린다. 이번엔 개새끼라고 하자!"
"하나 둘 셋! 개새끼!!!"
"찰칵!!!"
역시 고무兄의 개새끼는 위대했다.



흑산도 본섬으로 가는 배는 한 시 반에 있다고 했다.
염치없지만 학교에서 한 끼 더 얻어먹고 힘이 생긴 장수들은 아이들과 축구를 했다.
산을 깎고 돌을 다듬어 만든 조그만 운동장이지만 잘도 뛰어논다. 고무兄은 카메라를 들고 더 과감하게 뛰라고 아이들을 독려했다. 자기는 멋진 사진을 찍겠다고 하는 소리지만 삐죽삐죽한 잔돌이 가득한 곳에서 마구 뛰라니...

배 들어 올 시간이 다 되어 몇몇 아이들과 함께 부두로 나갔다.
항상 이때쯤이 제일 어려운 시간이다. 고무兄이 아이들을 부여 안고 통곡을 하기 때문이다.
얼마나 눈물이 많은지 뭍에서도 아이들 이야기만 나오면 금세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는 고무兄의 가슴에 병연이의 손가락을 물어뜯는 잔인함도 함께 뒹굴고 있음을 아이들은 알까?
나머지 사람들은 고무兄이 슬픔을 못 이기고 아이들의 귀를 물어뜯거나 꼭 끌어안고 바닷물 속에 몸을 던지지 않을까 두려워 고무兄을 빙 둘러싸고 이별의 포옹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고무兄은 본섬으로 가는 자그마한 배에 올라 끝없이 섬을 향해 안녕을 외치는 설이공주를 바라보며 묵묵히 선실로 들어가 수경침을 놓고 있었다. 어젯밤에도 고무兄은 사람들의 체질을 판별하고 침을 놔주었다. 침이라는 소리에 지레 겁먹고 다가오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지만 바늘로 놓지 않는 자석침이란 걸 알고 모두 자진(?)하여 기쁘게 고무兄의 마루타가 되어 임상실험의 대상이 되어주었다.
이곳저곳에서 탄 어르신들이 구성지게 노래를 부르신다. 흑산도 아가씨~~~



본섬 예리항에도 바람은 세차게 불고 있었다.
4시 20분에 떠나는 배를 타려면 시간이 많이 남아 아는 분의 차를 빌려 섬을 돌아보기로 했다.
자! 그럼 최익현 선생님과 정약전 선생님의 유허지로 출발!



면암 최익현 선생님이 유배를 오셔서 서당을 세워 후학을 가르치신 천촌마을 입구의 유허비.



최 선생님이 쓰셨다는 글귀...밑에도 글이 있던 것 같은데 누가 지워버렸다.



꼬불꼬불한 길을 지나 사촌에 닿았다.
정약전 선생님이 유배 오셔서 후학을 가르치신 사촌서당이 있는 곳이다.
곳곳에 멸치 말리는 모습이 가득했고 초등학교도 있는 아담한 마을이었다.
서당 표지판 건너의 돌담길을 따라 올라갔다.







사촌서당 바로 밑의 사촌성당.















사촌서당 옆의 민가. 독특하게도 담에 성벽의 총좌 같은 구멍이 죽 뚫려 있다. 이 마을의 집들도 가거도의 집들처럼 돌담이 지붕 끝까지 닿아있다. 바람을 막기 위함이겠지.



아직도 물이 맑은 1968년에 준공한 우물.



어떤 식품을 보관했는지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집집이 저온창고 같기도 하고 토치카 같기도 한 건축물이 하나씩 보였다.
 


사촌 마을 초입의 칠 형제 바위와 사촌마을을 지나 일주도로로 들어서는 구불구불한 산길.



이틀 동안 함께 잘~놀고 정을 나눈 2009 대둔도팀. 모두 수고했습니다...^^



시인 성호장군, 가수 설이공주, 시인 관섭장군, 영상전문가 도경여사, 시인 유종장군, 화가 병연장군



목포에서 만날 친구들을 위해 홍어를 조금 사기로 했다.
왕년에 흑산도에 살았던 성호의 안내로 찾아갔던 홍어집.
모주 같은 막걸리도 판다.









고무兄은 목포항 옆의 시장에 있는 식당에서 꿀맛 같은 저녁을 들고 팀원들과 아쉬운 작별을 했다.
최기종 선생님께서 새로 나온 시집을 선물로 주셨다. 참 부지런히도 쓰신다. 밤낮으로 노는 데 정신 팔린 고무兄은 새로 나온 시집 앞에서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이제 함평의 산하를 보러 갈 시간이다. 산하는 도예를 전공하는 애기아빠 청년이다. 올봄에 장가를 들어 처가에 가마를 짓기로 하고 함평으로 왔다. 산하가 장가들 때 고무밴드라는 어떤 이상한 사람이 노래를 부르며 주례사를 했다고 목포 결혼 백 년사에 씌어 있다.
벌써 아홉 시...나오는 배에서 미리 약속은 해놓았지만 많이 늦었다.
목포에서 함평은 사십 킬로미터 남짓...한 시간도 안되어 고무兄 눈앞엔 그토록 보고 싶었던(?) 산하가 서 있었다.
 


산하 작업장의 검은 고양이. 흰 장갑과 흰 부츠를 신었다. 누가 볼까 봐 꼭꼭 감추고 있네.



산하가 차린 술상...맛진 돼지고기와 홍어...구수한 입담과 가야금 소리가 넘실대던 밤.
아래 사진은 함양 읍내 목포식당에서 산하가 대접해준 생고기.
산하야...정말 맛지고 배부르게 잘 먹었다. 다음엔 내가 사줄게 바베큐 통닭!!



함평에서 고무兄은 많은 분을 새로 만났다. 산하네 처가 식구들과 새로 만난 국악 하는 친구들도 고무兄의 수경침 세례를 받았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모두 이상한 자석봉으로 사람을 괴롭히는 고무兄의 에너지에 눌려 아무 말도 못했지만 침을 맞고 스르르 잠드는 경험을 한 사람들은 고무兄과의 작별을 심히 슬퍼하였다. 머지않아 또 만날 기회가 있으니 다음에 함평 사람들 이야기를 계속하기로 하고 이만 이야기를 맺을까 한다.

아래 네 점의 도기는 산하가 선물로 준 것이다.
산하야...새 가마 지으면 예쁜 아가씨도 하나 구워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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