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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사진일기

2009년 10월 23일 원주 호모루덴스

by Gomuband 2009. 10.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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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말을 안 듣겠다고 반항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고무兄은 강제로 협박하여 별 수 없이 말을 듣게 하면 안된다고 말했다. 나중에 더 심하게 반항하거나 아예 나 죽여주쇼...하고 작동을 중지할 수도 있기 때문에...
난 잘 달래서 가동을 해보라고 말하고 해질 무렵 상일동의 상가 앞 벤치에서 서울막걸리를 홀짝대고 있던 고무兄을 옆자리에 태웠다. 술은 같이 마셔야 웬수같은 정이든 달콤한 정이든 술잔에 깃든다는 게 내 평소의 지론인 걸 아는지 모르는지 열심히 운전하는 옆자리에 앉아 세상 미친놈들 욕하며 혼자만 서울막걸리를 병째 나발 불어대는 고무兄...밉기도 하고 얄밉기도 하고...
질러간다는 길이 왜 이리 먼지 횡성이 나오려면 아직도 멀었단다. 여주로 가면 80킬로미터로 달릴 수 있는 신작로가 뻥뻥 뚫려있는데 애초부터 고무兄의 이야기를 들은 것이 잘못이었지. 낮에 지나가면 운치 있을 것 같은 길을 오밤중에 달려가니 답답하기만 했지만 더 참을 수 없는 건 끊임 없이 이어지는 고무兄의 욕지꺼리...어쨌든 원주에 잘 도착하여 무실동에서 막국수 한 그릇 얻어먹고 간결하게 살고 계시는 분을 만났다.



글씨는 배우는 게 아니고 이십 년쯤 쓰다보면 되더라고 말씀하시는 간兄의 말씀을 들으며 우린 신들린 듯 종횡무진 종이 위를 달리는 간兄의 솜씨를 김연아의 스케이팅을 보듯 가느다란 눈을 뜨고 훔쳐봤으며 먹 냄새를 안주삼아 보드카를 마셨다. 상선약수가 어디에 있는 샘물이냐?는 고무兄의 물음에 간兄은 노자라는 산에 있는 약수터라고 대답했고, 다시 고무兄이 음...노자라는 산은 어디에 있느냐?고 묻자 간兄은 당신 머릿속에 있다...고 답했다. 난 슬슬 짜증이 나서 날이 시퍼런 과도를 가져와 배를 깎기 시작했고, 소슬바람의 소슬을 한자로 쓸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안 무지몽매한 고무兄이 깨달음의 경지에 드는 환희의 비명을 질러댈 때 우리는 고무兄의 코골이 소리를 어떻게 피할 수 있을까?~만 생각하고 있었다.



백 장에 한 장정도 건진다는 고무兄의 사진솜씨를 믿기로 하고 우린 짧은 토요일 일정에 들어갔다. 오후 세 시까지 원주 근교의 모든 사람들을 다 만나보고 술도 한 잔씩 얻어먹기로...한중원의 찜질 가마에서 불장난과 물장난을 마치고 배고프다고 질질 짜는 고무兄에게 두 공기의 밥을 퍼먹였다. 아니 운전도 내가 했는데 밥값 좀 내지...돈 낼 때만 되면 다른 짓을 하는 고무兄 때문에 내 얼굴에 핏기가 가신 것을 눈치 챈 간兄이 이따가 맛진 순대국을 사준다고 하신다. 고무兄의 뒷뒤통수를 한 대 까려고 벽돌을 고르고 있던 나는 순대국이란 말에 집었던 벽돌을 살며시 내려놓고 딴청을 했지만 고무兄이 살짝 숨기고 있는 곡괭이 자루를 보고 벽돌을 내려놓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달재를 왼쪽으로 끼고 돌아 찾아간 평동의 이철수 선생님댁! 대문이 꽉~닫혀있다. "미리 기별하고 오신 건가요?" "아~뇨!" ㅋㅋ...그러면 그렇지...마음먹은 대로 모든 일이 다 되면 호모루덴스 놀이가 아니다. 교차로에서 귤 파는 총각들의 불알을 다 까놓겠다고 위협해서 얻은 제주귤 한 상자를 대문 모서리에 잘 모셔 놓고 우린 제천을 떠났다.



자! 이번엔 문막이다. 잠깐 모자란 아침잠을 이어 자다 보니 원주를 지나 모르는 곳으로 달리고 있는 걸 발견했다. 아니 어디로 가는 거야? 앞 좌석에선 해월선생이란 얘기가 자주 넘어온다. 해월선생이 거문고를 타시는 분이냐는 고무兄의 물음에 우린 차를 세우고 한동안 아침 먹은 것을 다 게워야 했다. 사람이 보일 때마다 간兄은 차를 세우고 새로 단장한 해월선생님 잡혀가신 곳을 아느냐고 동네 사람들에게 물었다. 아무도 아~무도 모른단다. 동네 사람들은 해월선생이 이장 정도 되는 사람으로 알고 있는 듯하다. 아까 지나친 기념비 옆으로 다시 돌아가니 길가에 우리가 찾던 곳이 빤히 보이는 곳에 있다고 알리는 표지판이 있다.






고무兄은 벌이 붕붕 날아다니는 해월선생님댁에서 빨리 나가자고 재촉을 한다. 차에 오르더니 엉뚱한 소릴 해댄다. 배가 고프면 꼭 헛소리를 하더라...말인즉슨! 해월선생은 원진녀와 보통 관계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원진녀의 집에 숨어있었다. 산골로 꼭꼭 숨기보다 길에서 훤히 보이는 곳에 계셨던 것은 허허실실 전략의 일환이었다. 원주 원씨 중에서 잘 찾아보면 해월선생님을 닮은 사람이 있을 것이다...뭐 이런 얘기다.



빨리 밥 내놓으라는 고무兄의 협박이 이십 분 정도 이어지고 우린 좁은목의 뒷불럭에 있는 순대국집으로 갔다. 간兄의 단골집이라는 맛집! 기쁘게 즐거운 표정으로 순대국과 머릿고기를 시키더니 소주를 좍좍 따라서 훌훌 털어 넣는다. 음~운전하기 싫으니까 꼼수를 쓰는구나...나도 고무兄보다 더 많이 마셔버릴까~하다 꾹 참았다. 이따 귀경길에 운전하라고 미리 잠들어 버려야겠다는 마음을 꾹꾹 눌러 순대국에 말아 먹었다. 아~또 계산할 시간인데 고무兄은 화장실로 가버렸다. 왜 나는 계산할 때만 되면 혼자 남는 것일까?




우린 노뜰이란 재미난 이름의 극단이 진을 치고 있는 곳으로 가서 식후의 여유로움을 자랑하기로 했다. 간兄은 순대국을 우리끼리 먹고 온 데 대해 불만이 있냐고 다짜고짜로 극단사람들을에게 시비를 걸어 그들을 당황하게 했으며, 때아닌 비적단의 습격에 항상 어려운 살림을 꾸려가는 극단의 대표가 몰래 숨겨두었던 커피를 톡톡 털어 석 잔의 커피를 끓여내는 동안 우린 그가 원주 원씨임을 알아내었고 해월선생님과 닮은 곳이 있는지 힐끔힐끔 살피다 공통분모를 발견했다. 그의 턱에도 염소수염이 있었던 것이다. 극단대표께 11월에 다시 습격할 것을 미리 알려드리고 그때도 이렇게 여자가 한 명도 없는 티타임을 갖게 해주면 원주 전체에 공연금지령을 내리겠다고 협박하는 고무兄을 끌어내느라 우린 다시 순대국을 모두 토해야 했다.



그럭저럭 해가 저물 준비를 했다. 우린 이별에 익숙지 않은 간兄을 두고 간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어쩌랴? 간兄은 한중원에서 막중한 임무를 계속 해야 하고 우린 의료봉사를 하러 가야하는 것을...반곡동에 들러 소정의 봉사를 마치고 우린 서울로 기수를 돌렸다. 이틀 동안 농땡이 친 게 미안했던지 고무兄이 운전을 하겠단다. 그러쇼!! 난 즉각 의자를 눕히고 잠을 청했다. 배를 몰듯 천천히 운전하는 고무兄의 놀잇배에서 난 아주 단 꿈을 꾸었다.
놀이는 계속 되어야 한다는 사탕을 빨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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