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Life/Writing

오징어와 춤을... 1

by Gomuband 2009. 11. 12.
반응형
고무兄이 드시지 않는 음식이 뭘까...생각하며 본부로 가다가 건어물 파는 노점이 보이기에 마른오징어를 댓 마리 샀다. 술은 고무兄에게 사달라고 해야지...마음은 정했지만, 오늘도 예전과 다르지 않게 본부로 들어간 지 삼십 분도 안 되어 셔울막걸리를 사러 황급히 뛰어나올 게 분명하리라.

본부의 문은 활짝 열려있었고 항상 그렇듯이 불도 침침하게 켜있었는데 고무兄이 보이지 않았다. 난 형님...형님...조그맣게 부르며 문 앞에 서서 고무兄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왜? 허락받지 않고 본부로 들어갔던 몇몇 사람들이 전한 피 튀기는 이야기를 잘 알고 있거든......



고무兄의 본부는 들어설 때부터 심상치 않은 포스를 풍긴다. 본부의 약도나 주소를 처음 받아든 사람이라면 누구나 고무兄이 화곡동 구석에 처박혀 뭘 하면서 살아남았는지 궁금하게 생각하면서 본부로 들어오는 길을 물어물어 찾아왔을 것이다. 은하계를 아우르는 우주 최고의 정보기관으로 그 누구에게도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오십 년을 버텨온 고무兄의 위장전술은 전 세계 첩보기관의 다양한 전술을 이수한 나로서도 경탄할 수밖에 없는 전법이었다. 도대체 이 사람의 전공은 무엇이며 출신지와 배경은 무엇인가? 여태까지 뭘 하며 살아왔는가? 고무兄을 안지 십 년이 넘어가지만 '알려고 하면 다친다'는 첩보계의 속담이 이 양반처럼 딱 들어맞는 사람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본부 입구의 출입구 오른쪽 문엔 청부살인 빼고 못하는 일이 없는 미디어프로덕션 안내문이 떡~하니 붙어 있다. 얼마 전까지도 왼쪽 문엔 교회안내문이 붙어 있었는데 유난히 하느님을 사랑하는 고무兄의 등쌀에 시달리다 못 견딘 목사님은 요양차 시골로 내려가셨고 요즘은 금성에서 파견된 아이들 세뇌학습학원이 들어와서 안내문을 바꿔 붙였다. 세뇌학습학원이 들어오자 본부는 아이들이 내뿜는 어지러운 주파수 때문에 외계인과의 텔레파시 소통에 어려움을 겪게 되었고 급기야 고무兄은 본부입구에 제한된 주파수 이외의 소통을 시도하는 놈은 불알을 까버린다는 무시무시한 문구를 써 붙였다. 누런 중질지에 괴발개발 갈겨 쓴 경고문을 본 아이들은 어디 개가 짖느냐는 듯 더욱 난잡한 주파수를 사용하며 본부 앞을 지나다녔으나 며칠 후 정말로 불알이 까진 아이들 일곱 명이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한 사람당 백 장의 반성문을 본부 문 앞에 놓고 삼천 배를 마친 후 물러가는 것을 보고 세뇌학원 아이들은 지옥이 가까이에 있었음을 그제야 알게 되었다.



본부에 처음 온 사람은 아무리 급한 볼일이 있더라도 본부로 내려가는 계단에 첫 발을 디디며 내가 과연 여기 들어가서 얻을 것이 무엇인가?...잠시 망설이게 하는 야릇한 기운이 느껴질 것이다. 누구나 고무兄을 쉬지 않고 담배를 피우는 골초로 알고 있는데도 복도에는 '흡연장소는 여깁니다. 편안히 즐기세요'라는 친절한(?) 안내문이 붙어 있었고, 발에 차일 정도로 수북하게 쌓인 갖가지 반성문 더미와 제발 신문 좀 보고 사시라고 문을 두드렸다가 사정없이 밖으로 열린 철문에 맞아 흘린 코피가 말라붙은 검붉은 자국까지 발견했다면 아마 그냥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았으리라. 그래도 두려움을 이기고 용기를 내어 문을 두드렸거나 아무 생각 없이 문 손잡이를 잡은 사람은 틀림없이 십이만 볼트의 고압이 주는 충격에 삼 미터쯤 날아가 구석에 처박혔을 것이다. 이는 고무兄이 본부  입구에 영점오 포인트의 아주 작은 글씨로 써놓은 경고문을 자세히 읽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난 일로, 문 손잡이에 달라붙어 감전으로 즉사한 고무兄의 천적들이 손해배상을 사천이백 번도 넘게 청구했으나 우리의 좋은 친구들인 경찰과 검찰에선 매번 고무兄의 손을 들어주어 민심이 크게 흉흉해진 적도 있었다. 고무兄이 제공하는 정보에 국가의 운명이 우지좌지 되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오히려 새로 개발된 부비트랩을 설치하라고 성금을 모아주었으며 곧 러시아 마피아가 한 번에 십오만 팔천 발의 별모양 코딱지가 쏟아져 나오는 신제품을 가지고 올 것이라는 소문도 돌고 있었다.



나는 고무兄이 누군가를 유인하려고 일부러 문을 열어 놓았을 것이 틀림없을 것이라는 심증을 굳히고 오징어를 한 마리 꺼내 반성문 종이로 말아 쥐고 문 손잡이에 살짝 대보았다. 예상과 달리 오징어는 오그라들지 않았고 아무 자국도 생기지 않았다. 이상한걸...이번엔 맨 손으로 문 손잡이를 잡아보았다. 순간 '빠지직'하는 소리가 나면서 내 손바닥에서 연기가 솟았으며 난 손바닥 껍데기를 문 손잡이 붙여둔 채 계단으로 나동그라졌다. "누가 오셨나?" 고무兄이 부스스한 얼굴로 고개를 내밀었다. "아니 형님 조금 전까지도 전기가 통하지 않았었는데 어떻게 된 거에요오오오..." 벌겋게 까진 손바닥도 손바닥이지만 계단에 날아가 부딪힌 허리가 너무너무 아파서 눈물이 펑펑 나왔다. "요새 감전사하는 놈들이 없기에 고장 난 줄 알고 시험 중이었지...좀 따갑지? 들어오렴..." 좀 따갑다니...형님이 한 번 당해보시지...세상 사람을 다 몰살시키겠다고 길길이 날뛰었을텐데...
 


고무兄은 본부의 경보장치를 다 뜯어서 새로 꾸미고 있었다. 본부 바닥엔 러시아 글자가 쓰인 나무상자가 서너 개 쌓여 있었고 해적선 해골 표시가 선명한 자루가 서너 개, 낚싯줄이 한 타래, 정육점에서 생고기를 걸어 놓을 때 쓰는 커다란 갈고리가 열여섯 개 보였다. "많이 아프냐?" 고무兄이 누런 약병을 들고 나왔다. "이리 손 내봐, 약 발라줄게." 아니 약을 발라주다니? 이 양반이 갑작 왜 이러실까? "괜찮습니다. 벌써 다 나았습니다." "에이...그럴 리가 있나 시험하느라 이만 볼트까지 올렸었지만 그래도 고압인데....어서...착하지." 난 발갛게 까진 손바닥을 주춤주춤 내밀었다. 고무兄이 약을 손바닥에 붓자 고약한 냄새와 엄청난 쓰라림이 밀려왔다. "아니 형님 이 약이 뭐에요? 너무 아파요..." "봐도 모르냐? 이건 삼백팔십 년 묵은 된장이다. 친일파 이완옹네 장독에서 퍼온 건데 냄새는 놈들처럼 지독해도 약효는 최고지!" "아무리 아파도 독립투사의 자손이 친일파 놈들의 된장을 바르다니 이 치욕은 절대로 참을 수 없어요! 이 손을 잘라버리겠어요." 난 벽에 걸린 고무兄의 무기 중에 가장 살벌하게 보이는 윤 관 장군이 쓰시던 고려도를 집어들고 손목을 내려칠 기세로 방방 뛰었다. 내가 손목을 자르겠다는데도 고무兄은 아무런 제지도 않고 뭔가 생각하더니 벽에 달린 스위치를 눌렀다. 스르륵! 내 옆 벽의 작은 문이 열리더니 작두같이 생긴 물건이 튀어나왔다. "그건 이라크에서 도둑질한 눔들 손 자르는 작두야. 그걸로 잘라라 아프지도 않고 한 번에 싹둑 잘릴 거야. 빨리 자르고 가서 막걸리 사와라." 고무兄은 내가 사온 오징어를 들고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현대슈퍼 아줌마는 내 손에서 나는 냄새 때문에 나를 가게 안에 들어오지도 못하게 했다. "아휴~그게 무슨 냄새에요. 똥을 묻히고 다니면 어떡해." 슈퍼 구석에서 라면을 먹던 현대슈퍼 아저씨는 된장 냄새가 코끝에 닿자마자 아침부터 먹은 모든 것을 다 게웠으며 아줌마 몰래 집어먹은 쥐포가 덜 삭은 채 토한 것에 섞여나오자 잽싸게 쥐포만 골라서 다시 급하게 먹다가 사래가 들려버렸다.
셔울막걸리를 사가지고 본부로 돌아오니 고무兄은 러시아어가 쓰인 상자를 뜯고 있었다. 상자 안에는 쥐덫같이 생긴 게 들어 있었고 쥐덫을 꺼내자 커다란 샤워기 같은 게 나왔다. "형님 이거 어디다 쓰시려고?" "응..이게 지난번에 사람들이 고맙다고 성금을 모아줘서 사들인 부비트랩이다. 쏘련눔들거야. 일단 한 잔 하자." "무슨 부비트랩이 가정용 샤워기와 쥐덫처럼 생겼어요?" "그게 바로 너처럼 눈이 낮은 놈들을 속이기 위함이지. 잔 받아랏!" 고무兄은 언제 씻었는지 알 수 없는 시커먼 머그잔에 막걸리를 가득 따라 주었다. 나는 깨끗한 새 컵을 꺼내어 고무兄께 가득 부어드리고 본부 문 손잡이에 오징어를 구워가지고 왔다. 오징어엔 내 손바닥 껍질이 조금씩 묻어있었지만 고무兄은 그게 내 손바닥 껍질인지 알지 못했다. "오징어 맛있구나. 근데 사람 고기 냄새가 좀 나는 것 같지 않니?" "아아...아뇨...전 아무 냄새도 안 나는데요..." 난 내 손바닥 고기 냄새를 없애려고 얼른 부엌에서 오띠기 마요네즈를 꺼내와 오징어에 잔뜩 뿌려버렸다.



 "역시 마요네즈는 오띠기가 최고야! 안 그러냐?" "그럼요! 마요네즈도 케챱도 오띠기가 최곱니다." 고무兄은 모든 반찬에 다시도와 미웡을 듬뿍 뿌린 식당만 찾아다녔고 모든 반찬을 초고추장이나 초간장에 찍어서 드셨다. 초간장에도 오띠기식품에서 나오는 와시비와 겨자가 꼭 들어가야 했고 초고추장을 만들 때 빙초산을 고무兄이 좋아하는 비율로 섞지 않은 날은 그 음식점 문 닫는 날이었다. 전국의 쓸만한 음식점이 고무兄의 횡포로 점점 줄게 되자 난 한가지 묘안을 생각해 냈다. 조선요리전문가 안숙려 선생을 찾아가 미리 고무兄이 좋아하는 양념과 초간장, 초고추장을 만들어 식사 갈 때마다 항상 지니고 다녔던 것이다. 안숙려 선생의 종합 양념세트는 곧 고무兄을 사로잡았고 고무兄은  대통령을 졸라 전국의 모든 음식점에 종합 양념세트를 비치하도록 법을 바꾸었으며 이달 말부터는 세계식도락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안숙려 선생의 양념이 전세계로 팔려나가게 된 것까지는 좋았는데, 슬슬 안숙려 선생의 양념에 싫증이 나기 시작하는 눈치가 보이자 정부에서는 좀 더 젊고 아름다운 요리연구가를 뽑아 고무兄 옆에 영구히 붙여두는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고 했다.



막걸리를 세 병씩 비우고 우린 신제품 부비트랩 설치를 시작했다. 본부 문 앞에 접근하여 고전압 감전장치를 무력화시키려는 눔들이나 본부 문을 탱크나 미사일로 공격하려는 눔들의 징후가 보이면 가차없이 부비트랩이 눔들의 머리 위에서 작동하도록 세심히 각도를 조정했으며 재래식 쥐덫 같은 장치로 적의 방심을 유도하여 쥐덫을 피하는 순간 천정에서 날아온 갈고리에 사정없이 찍히도록 온갖 방향에서 침투하는 가상훈련을 마치고 나니 난 온몸이 성한 곳이 없었고 갈고리에 찍힌 상처가 곪기 시작했다. 고무兄은 친일파 된장을 온몸에 떡칠해주셨고 난 상처를 붕대로 칭칭 감고 미이라처럼 고무兄 앞에 앉았다.
 


"내가 너를 부른 것은 다 연유가 있어서였다. 내가 할 일 없이 너를 불러다 손바닥을 태우고 찌꺼기가 붙은 오징어를 먹이겠느냐?" 아~이제 나는 죽었구나...손바닥 껍질 오징어를 다 알고 계시다...
"요즘 먹물들이 심상치 않다.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자꾸 정치적 발언을 하는구나." "아닌데요. 저는 요새 방송이고 신문에서 먹물들을 본 적이 없습니다. 이천팔 년에 고무兄께서 먹물들을 쓸어버리신 이후 모든 먹물들은 학교와 연구소에서 열심히 건설조국을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그럼 팔대강 메우기사업이 다 끝났는데도 전국의 모든 개천을 다 메워버리자는 놈들은 뭐냐?" "아~그 사람들은 각하께서 동해를 십 년안에 메워 독도와 육지를 연결하시겠다고 자꾸 말씀을 하고 다니시니까 불안한 일뵨눔들이 사주한 친일파 학자들입니다. 각하께선 친일파를 모조리 뿌리 뽑는 게 우리 민족의 사명이라고 항상 말씀하시지만 외국에서 보기에 다양한 의견이 있는 나라처럼 보이려면 최소한 두 명은 남겨놔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두 명 가지고 되겠어?" "두 명만 있어도 아이디를 바꿔가면서 글을 쓰기 때문에 일당 백의 효과가 있습니다. 이천팔 년 이후에 각하께서 댓글알바를 모조리 소탕하셔서 고무兄님께선 손해를 많이 보셨지만 아직 댓글알바들 아이디는 살아있지 않습니까? 그걸 이용하는 거죠." "난 그것도 모르고 오징어, 문어, 주꾸미, 꼴뚜기 등의 족속들에게 앞으로 먹물을 절대 생산치 말라고 명령을 하려고 했다." "요새 생산되는 먹물은 생각하는 기능이 없어서 비판의식이 없습니다." "아니다...절대 방심하면 안 된다. 전에 새유깡 가루로 유전자 조작을 한 먹물들에게도 새로운 변화가 있었다고 왕우속 박사가 알려왔다. 어떤 새유깡이 맛있는지 미각을 갖게 되었다는 말이다." "왕우속 박사라면? 전 국민 무식화 유전자를 개발하신 분이잖습니까? 그분이 왜 새유깡가루 프로젝트에 참여했을까요?" "그걸 내가 어떻게 아냐? 각하가 시킨 일이니까 너는 입 다물고 가만있어라. 밖에서 그런 소문이 돌면 네 입을 찢어서 새유깡 공장으로 보내 과자로 만들어 버릴 것이다." "맹세합니다. 형님, 제가 이번에도 나불거리고 다니면 저를 형님의 외식 담당요리사와 영원히 붙여주소서." "알았다 자웅동체로 만들어 영원히 잡생각을 못하도록 만들어 주겠다. 그럼 앞으론 먹물들 걱정은 안 해도 되는 거지?" "그렇습니다. 앞으로 각하의 전 국민 인공수정 프로젝트가 발표되면 이젠 정말 다리 쭉 뻗고 주무실 수 있습니다. 앞으론 이런 부비~"까지 이야기 했을 때 본부 밖에서 부비트랩 터지는 소리가 났다. "꽝! 악! 퍽! 윽!" 본부 문을 열어보니 부비트랩이 터지면서 발사된 십오만팔천 개의 별모양 코딱지가 온몸에 꽂히고 천장에서 내려온 갈고리에 배가 뚫린 왕우속 박사의 연구원이 새까맣게 그을은 채 계단에서 뒹굴고 있었다. 그의 손목엔 쇠사슬이 달린 가방이 매달려 있었는데 고무兄은 비통한 얼굴로 가방만 챙기고 연구원은 청소기로 빨아내 버렸다.

반응형

'Life > Writing'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징어와 춤을... 3  (0) 2009.12.05
오징어와 춤을...2  (2) 2009.11.25
커서를 찾아랏! 1  (6) 2009.1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