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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사진일기

고무兄의 인천 음악회 이야기

by Gomuband 2009. 10.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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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무兄은 짐을 다 싣고 다시 본부 안을 들여다 보았다.

매번 싣고 갈 짐의 목록을 만들었었지만  이번엔 뭐에 홀렸는지 목록도 만들지 않고 눈에 띄는 대로 본부 입구로 내놓은 다음 차에 실었기 때문에 뭔가 빠뜨렸을 것으로 생각은 했지만 뭐가 빠졌는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인천으로 가는 고속도로에 올라 부평 IC를 지나는데 머릿속에 빠뜨리고 온 물건의 윤곽이 나타났다. 스크린! 그래 스크린을 빼먹었구나. 어떡하지? 홀에 커다란 TV가 있으니 S-VHS로 연결하면 되지 않을까? 환자를 격리하는 파티션에 하얀 종이를 붙이고 프로젝터를 쏘아도 될 텐데...서인천 IC에서 차를 돌릴까? 잠시 망설였지만 꼬리를 물고 늘어지는 차량 대열은 고무兄에게 빠져나갈 틈을 주지 않았다.

고무兄과 그의 잡동사니들은 예정 시간보다 훨씬 늦게 연수구에 도착하여 지원군과 합류했다. 음향기기들을 세팅할 시간이 빠듯했지만 항상 식사를 하고 시작하는 것을 평생의 미덕으로 굳게 새기고 있는 고무兄은 지원군 대장을 협박하여 송도에서 제일 맛있다는 갈비탕집으로 갔다. 이런이런! 이렇게 좋은 자리에 갈비탕집이 있다니...하루 종일 해받이를 할 수 있는 자리에 듬직하게 자리 잡고 있는 갈비탕집의 자태...부럽다...부러워...음식도 이만하면 입에 맞고...언젠가 접수하여 본부로 만들고 말리라...카운터에 있는 예쁜 여자애들 둘도 함께...

병원 주차장이 공사 중이라 고무兄은 길옆의 주차구획에 차를 세우고 영업이 끝나는 시간까지 주차비를 선불로 지불했다. 고무兄의 차가 길다고 계속 씨부렁거리는 주차관리원을 한방에 때려눕힌 고무兄은 지원군이 없었더라면 혼자서 스무 덩이가 넘는 짐을 날랐을 것이라고 치를 떨며 열심히 짐을 날랐다. 이런 바람이라면 뒤에 벽을 지고 무대를 만들어도 스크린이 날아가 버렸을 것이야...소리가 쥐 씨알만한 내 앰프는 바람 소리를 넘어서지 못하고 바로 지리멸렬했을 것이고...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음악회에 왔다가 추위와 무음으로 짜증이 난 관객들이 고무兄의 얼마 남지 않은 머리를 다 뽑아버리고 그 자리에 구리스를 잔뜩 발라놓고 돌아갔으리라 생각을 하니 짐 나르면서 흘렀던 땀들이 다시 땀구멍으로 들어가 버렸다.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지만 고무兄은 최대한 천천히 음향기기들을 세팅했다. 예정대로 시작한다면 일찍 마칠 수 있겠지만 객석이 좀 빈 채로 음악회를 시작한다는 것은 오늘의 초대손님 성봉대왕에게 면목이 서지 않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로사네성에서 작은 앰프 하나로 하는 음악회를 본 크레타군은 고무兄이 싣고 온 장비들이 다 어디에 쓰일까? 의아하게 생각했다가 하나하나 제자리를 잡아가는 것을 보고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말이 좋아 음악회지 고무兄 입장에서 보면 음향장비 이동사업이 아니겠는가? 이렇게 많은 보따리를 싣고 전국을 다니며 기름 값도 안 나오는 음악회를 하다니...정신이 조금 푸른색으로 물들지 않고는 절대로 이런 일을 할 수 없으리라. 크레타군은 음악회를 마치자마자 바로 집으로 가서 고무兄에게서 받은 정신적 충격을 붉은 소독제로 치료하기로 마음먹었다.

예정보다 정확히 32분 늦게 음악회가 시작되었다. 30분 늦게 시작할 수도 있었는데 고무兄은 밖에서 꾸물거리며 올라오지를 않았다. 담배 피우며 통신장비를 점검하고 있는 게 분명했지만 아직도 도착하지 않은 손님들의 잇단 전화 때문에 아무도 독촉하러 내려가지 않았다.
관객이 한 곡 노래하고 고무兄이 두 곡 연주하는 방식의 음악회는 관객이 좀 손해를 본다는 느낌이 팍팍 들었지만 노래하기 좋아하는 고구려 사람들의 습성을 나름 받아들여 고무兄 자신이 음악회 프로그램을 짰으니 뭐라고 딴죽을 거는 사람들은 없었다. 고무兄이 아무리 딴청을 피우고 엉터리로 기타를 연주해도 딴지를 걸지 않는 이유는?...바로...고구려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거도에서 벌어졌던 음악회의 초나라 관객 몰살 사건을 뼈저리게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오래전 가거도에서 열렸던 고무밴드의 음악회 날 아침에 멸치잡이 배가 난파되어 상륙했던 초나라 사람들이 있었다. 항우의 자손이라고 쓴 더러운 깃발을 앞세우고 부엌칼을 하나씩 허리춤에 꽂은 항우의 졸개들은 가거도에 하나밖에 없는 술집을 차지하고 앉아 매일 술에 빠져 몽롱한 기분을 즐기는 게 유일한 취미인 동네 주정뱅이들을 모조리 내쫓고 행패를 부리며 술을 마셨는데, 멸치젓 담는 커다란 플라스틱 통에 가게 안의 소주를 모조리 붓고 술집주인 마누라를 홀딱 벗겨서 푹 담가놓고 시큼하고 고린내 나는 술 맛에 시시덕거리던 놈들이 선창에서 음악회를 시작하는 소리를 듣고 모두 몰려나온 것이 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듣는 음악회가 될 줄은 가거도에서 오백 년이 넘게 살아온 순금틀니의 이장도 대머리 지서장도 아무도 몰랐다.
 
가거도 음악회도 항상 그렇듯이 고무兄이 두 곡 연주하고 관객이 한 곡 부르는 형태로 진행되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지네들이 아는 노래가 나오지 않자 항우의 졸개 중 더럽게 생겼다고 자부하는 놈이 고무兄에게 코딱지를 파서 날리며 시비를 걸었다. 처음 몇 개가 날아와 기타에 맞고 떨어졌을 때까지는 고무兄이 잘 참고 넘어갔지만 새우젓을 가운데 넣고 돌돌 만 코딱지가 고무兄의 왼쪽 무릎에 정확히 안착했을 때 고무兄의 안색이 변한 것을 눈치 챈 사람들은 곧 벌어질 사태가 너무 두려워 숨을 쉬지 못하고 박수도 치지 못했다. 두 곡의 연주를 마친 고무兄은 박수도 치지 않고 큰 소리를 내며 하품을 하는 졸개의 우두머리쯤 되는 놈에게 무릎 위의 코딱지를 중지로 튕겨 날렸다. 저 위력적인 고무兄의 중지...놈들은 몰랐으리라...마다가스카르에서 열린 세계 알까기대회에서 고무兄의 중지에 맞은 바둑돌은 상대편의 바둑돌을 밀어내기도 전에 산산조각으로 부숴버렸으며 바둑돌이 부서질 때 난 소리는 FBI가 크렘린궁에 설치한 도청기에까지 엄청난 크기의 소리로 녹음되어 나중에 도청한 테입을 재생하던 FBI요원은 헤드폰을 머리에 끼운 채로 묻어야 했다는 사실을... 예상대로 새우젓 말이 코딱지는 한껏 벌린 목구멍 가운데 정통으로 꽂혔고 갑자기 숨통을 막는 코딱지를 꺼내려고 다섯 손가락을 모두 입에 쳐넣던 놈은 제 손으로 제 입을 막은 채로 질식하여 절명하고 말았다. 고무兄은 제 입에 제가 손을 쳐 막고 앉아서 죽은 놈을 빼고 나머지 놈들을 불러내어 한 놈씩 노래를 시켰다. 곡목은 첨밀밀...가사를 모르는 놈은 바로 고무兄의 중지 튕기기를 이마 한가운데 맞고 방파제 밑으로 떨어져 굴렀으며 조금 알더라도 중간에 틀린 놈은 새끼손가락으로 뺨을 한 대씩 가볍게 맞았는데 놈들의 뺨 가죽이 얇은 건지 고무兄의 새끼 손가락이 뾰족한건지 한 방씩 때릴 때마다 놈들의 볼은 뻥뻥 뚫려 썩은 이빨과 피를 쏟으며 먼저 떨어진 놈의 뒤를 따라 방파제로 데굴데굴 굴렀다. 마지막 한 놈은 노래를 시작하기도 전에 지가 알아서 방파제 밑으로 뛰어들었으나 불행하게도 앞서 떨어진 불량한 식품을 포식하고 돌아가 버린 상어 떼에 물려 한 번에 죽지 못하고 피 냄새를 맡고 몰려든 유명한 가거도 장어떼의 날카로운 이빨에 거의 한 시간 동안 분해가 돼버렸다. 그때까지도 소주를 채운 멸치젓 통에 푹 빠져있던 술집 아낙은 온몸의 땀구멍으로 알콜을 흡수하여 정신이 나간 상태로 선창으로 나왔다가 마지막 놈을 분해하는 장어떼를 보고 이상한 기운에 사로잡혀 몸을 비트는 춤을 추기 시작했는데 오백 년 가거도 역사에 선창에서 벌거벗고 춤추는 것을 처음 보게 된 주민들은 말릴 생각도 안 하고 애나 노인이나 여자나 남자나 벌거벗고 춤을 함께 즐겼다는 죄명으로 모두 가거도 지서의 좁은 유치장에 수감되어 목포로 이송하는 데만 삼십 일, 재판하는 데 이백칠십구 일이 걸렸다고 목포경찰서 수사과의 문서에 적혀있었다. 이 모든 소란 속에서도 고무兄은 음악회를 끝까지 훌륭하게 마치고 항상 그렇듯이 마지막 노래로 '행복의 나라로'를 함께 불렀으며 25톤 차로 가득 싣고 온 고무兄의 CD를 섬주민 모두에게 나누어 주고 숙소로 들어갔는데, 그날 밤 무적의 손가락을 지닌 고무兄의 씨를 받으려고 줄을 선 아낙이 얼마나 되었는지는 가거도 이장만이 알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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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장에서 하는 음악회는 물론, 세계 어느 곳이건 어느 상황이건 어떤 자리에서도 음악회를 해보았다는 고무兄은 오늘도 음악회 할 때마다 입는 단벌 회색 콤비 양복을 입고 무대에 올랐다. 음악회 할 때마다 고무兄의 사진을 찍는 기성찍사는 여태까지 찍은 고무兄의 사진이 모두 회색 콤비만 입고 연주하는 똑같은 사진이라 고무兄이 음악회 사진을 달라고 할 때마다 같은 사진의 배경만 포토샵으로 바꿔서 메일로 보냈으며 배경이 바꿔치기 된 것을 잘 모르는 고무兄은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음악회 사진을 찍어주는 기성찍사가 고마워서 기성찍사가 찍사 일을 그만두고 생선을 분해하여 사람들을 먹이는 식당을 차렸을 때 가게 앞에서 칠십 일 동안 밤을 새워 음악회를 벌여주었다. 회색 콤비 안에 받쳐입은 티셔츠가 흰색인 게 좀 마음에 걸렸지만 오늘 음악회는 사진촬영이 엄하게 금지되어있었으므로 옷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단지 관객들이 생각하기에 저렇게 옷을 맞춰 입을 줄 모르는 사람이 음악은 어떻게 만들까...하는 생각을 할까 봐 음악회 내내 고무兄의 꼬리뼈 끝이 간질간질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배가 고파서 그런지 가끔 기타 줄을 헛짚기도 했지만 예정대로 1부 자기 순서를 마치고 성봉대왕을 무대로 모셨다. 수원의 맹주 성봉대왕은 삼십 년 넘게 연마한 포크 신공을 트로트 신공과 적당히 섞어 관객들을 환상의 오르가즘 분위기로 몰아넣었으며 이러다가 큰일이 나겠다고 생각한 고무兄이 무대로 뛰어 올라가 막 옷을 다 벗어버리려고 하는 성봉대왕을 말리지 않았더라면 오늘도 가거도에서 일어났던 나체춤의 향연이 재연될 가능성이 충분히 있었다고 뒤풀이 자리에서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크레타군이 말했다.

이번 음악회는 상당히 특이하게 뒤풀이를 관객들과 함께하지 않고 출신성분과 타고난 체질에 따라 구분하여 따로따로 식사하기로 했는데, 식당 위치를 알리지 않고 숨어버린 사람들을 모두 찾아 서울로 가는 전철 막차로 태워 보내는 일을 책임진 크레타군은 술래잡기를 계속하는 사람들 찾아내기에 너무 지쳐서 병원 뒷골목 영양탕 집에서 일 인당 소주 다섯 병씩 마시고 잠들어 버린 사람들을 빼먹었다는 사실을 그 다음 날 저녁까지도 몰랐으며 간신히 그들을 생각해내고 영양탕 집을 찾아갔을 때 그들은 이미 연수구 경찰서 유지창에서 행복한 꿈을 꾸고 있었다. 음악회를 마치고 오리집으로 저녁을 먹으러 간 자리에서 옛 가수 박상규대왕을 만난 성봉대왕은 갈빗집을 접고 오리집을 차려보려는 속마음을 술술 다 털어놓았으며 고무兄은 오리집의 소주를 다 마시고 차에서 자다가 내일 집으로 가겠다고 한 시간을 우겨댔으나 음악회 장소로 성봉대왕을 찾아온 백제 여인의 간곡하게 말리는 손길에 무너져 소주 한 잔만 마시고 쓸쓸하게 서울로 돌아갔으니 나중에 그 후환이 두려워 삼백일 동안 아무도 전화를 하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크레타군으로부터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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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여주의 산사음악회에서 법당 안 연주장면입니다.
부처님 앞에서 기타를 치려니 죄가 많아 자꾸 무서웠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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