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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사진일기

장군의 편지

by Gomuband 2009. 6.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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西厓...
남양으로 가는 물길에 서니 마음이 조급하구려.
문초 받으러 한양에 다녀간 지 사백 년이 넘어
세월이 흐른 자취가 심히 궁금하였기 때문이오.
바다를 거슬러 오르며 보니
조선 땅 곳곳에 바다는 간 곳 없고 땅만 가득하더이다.
이리하면 바다에 깃들어 살던 백성을 어찌 먹일까 근심이 가득하였소.

갑문을 부수고 수로를 타고올라 남양에 상륙했소.
백성을 만나보니 바램도 가지가지더구려.
땅값이 올랐다고 배추밭 일구던 호미를 분질러 버린 촌로의 힘겨운 바램
갯벌 대신 논을 일군 어부가 풍작을 기원하는 서투른 바램
어서 공장이 많이 지어져서 손님이 많아지기를 바라는 공구상가의 한적한 바램
다 필요 없고...일할 사람이나 넉넉했으면 좋겠다는 공장주의 간절한 바램
위대한 統領이 이번에는 틀림없이 부자를 만들어 줄 거라는 공허한 바램...

* 맞춤법으로는 '바람'이 맞다. 난 맞춤법을 존중한다.
  하지만 난 내가 좋은 말만 쓰기로 했다.
 '짜장면'처럼... *

새로 조성되는 도시엔
예전부터 있던 힘과 새로운 힘이 대낮부터 혼음을 하는 소리가 역겹더이다.
  모두 갈아엎자고!
  모두 메워버리자고!
  갯벌을 메우고 쌀을 증산하여 사일로(silo)에 쌓아두어야지.
  수매를 하든
  썩어 문드러지든
  윗동네 사람들이 굶어 죽든 말든...
  농사가 재미 없으면 공장을 짓지 뭐.
  공장에서 일 할 사람이 있든 없든 상관없잖아?
  우린 땅만 만들어 팔아 먹으면 되는 거야...

맞소...맞아!
당신들이 언제 진정으로 나라의 안위와
민족의 앞날을 생각하며 일 한 적이 있었소?
수 백 년 동안 밥그릇 싸움의 기술만 연마하지 않았소?

효종 때.
군사를 길러놓고도 당신들 수하인 문신을 장으로 세웠다는 이야기를 읽었소.
결국 지휘를 못해 정작 변란이 일어났을 때 쓸모없는 군사가 돼버렸다는 게 사실이오?
전라좌수영 같았으면 정말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일이었소.
대국에 기대어 모든 것을 법도와 예의에 어긋난다고 앵무새처럼 지저귀던 당신들에게는...
외침을 받아 집안의 부녀자들이 욕을 당해도
뎅겅뎅겅 잘린 백성의 목이 우물에 가득해도
그건 무지한 백성의 일이었고 당신들과는 상관 없는 일이었소.
백성 이야기는 차치하고 위로는 또 어떠하였소?
당신들이 벌인 말의 잔치는 힘없는 왕의 창자를 치욕으로 삭게했고
똑똑한 신하가 두려웠던 당신들의 독사 같은 혓바닥은
왕을 질투심에 눈멀게하지 않았소?
제발...
고매한 선비와 못난 사대부를 교묘히 섞어 나라의 미래를 망치는 작업은 그만두시구려.
못난 짓을 너무 오래 보고 들어서 이미 눈이 짓무르고 귀가 썩었소이다.

귀를 막고 입을 봉하고 물만 쳐다보고 돌아앉아 있어도
세상의 이야기는 바람을 타고 산을 넘더이다.
능력이 출중하여 나라를 위해 일할 사람은 자기 자리에 있지 않고
납작 엎드려 칼날이 피해가기만을 기다린 자들은 당상에 가득하니
세상 모르고 배 위에만 있는 내게도 어찌 근심이 들지 않겠소? 

국운이 가파르게 위태하여
인재를 모아 세상의 구린 음모에 현명히 대처 해야 할 시기에
귀를 막아 충언 듣기를 거부하고
백성의 입을 벌금으로 막아 양심의 소리를 봉쇄한다는 게 사실이오?
빠져나갈 데 없는 저인망으로 정적을 훑어내어 감옥으로 보내고
삽자루 다룰 줄 모르는 사람들은 비정규직이라는 노예로 부린다는 것도 사실이고?
그렇다면...
전국의 큰 강에 물길을 파 천천히 재화를 수송하려는 계획도 사실이겠구려.
서양의 많은 나라는 오래전에 만든 콘크리트 강변을 친환경적으로 복구한다는데
이 어찌 시대를 역행하는 일을 벌이고 계시오.
노가다 경기를 살리려면 친환경적 사업을 하면 될 것 아니오?
참 딱하시오.



다들 여유가 있는 건지
모조리 일자리에서 쫓겨난 건지...
어딜가나 노는 사람이 너무 많더이다.
젊은이나 나이 든이나...

이리 노는 사람이 많아도
매일 입에 밥이 들어가고
뒷간에 똥이 쌓이고 있으니
우리나라는 건국 이래 최고의 호황을 누리고 있다고 보오.
단 하나, 안타까운 게 있다면
사람들이 말이 많다는 거 아니겠소?
당신들이 말하는 잃어버린 십 년 동안
백성의 말하는 재주가 일취월장하여
말 못하는 사람이 없다는 게
옥의 티 아니겠소?



곧은 낚싯바늘을 담그고 때를 기다리는 낚시꾼이
붕어를 잡아 끼니를 해결해야만 하는 때가 오면
세상은 더 부글부글 끓을 것이오.
백성 다수가 보고 있다고 믿는...믿고 싶은...
미디어를 장악한다고 모든 게 가려지는 것은 아니오.
누르면 누를수록 탄력은 강해지고
막으면 막을수록 수압은 높아지는 것이라오.



논에 심겨진 모가 쌀이 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오.
당장 배고프다고 싹 틔울 쌀을 먹어버리면
계속 굶을 수밖에 없지 않겠소?
아직 삼 년이란 시간이 남았지만...
일 년 반의 헛손질로 충분하오.

지금이라도 늦지 않으니
맑은 물로 귀를 씻어 참소리를 듣고
참을 가장하는 간신배들을 멀리 하라고 권하시오.
비록 모시는 신은 다르나
統領께서는 살인한 자도 용서한다는 서양신을 가슴에 모셨으니
천지신명께 복명하여 진심으로 사죄하면
그동안의 대과도 능히 용서 받을 수 있다고 보오.

西厓.
건강한 심신으로 統領과 함께
운수대통의 대한민국을 만들어 주기를
다시 한 번 부탁하오.

                                          남해에서
                                                       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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