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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Writing

20120805-소설 "동물농장" 3막 - 곤충편 1

by Gomuband 2012. 8.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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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동물농장" 3막 - 곤충편 1

노린재 이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어...오늘...오늘...일제단속이 있답니다...
그러니까...어...풀 밑으로 빨리 숨던가...
어...다른 데로...이런 옘병...벌써 옵니다..."
얼마나 급했는지 마이크를 끄지도 않고 줄행랑을 놓는 바람에
이장 마누라 악쓰는 소리가 온 동네에 울려 퍼졌다.
"지 새끼도 안 챙기고 토끼냐? 오라다 땀을 낼 눔!!!"
이장 마누라는 며칠 전에 부화한 새끼 세 마리를 등에 태우고
알이 잔뜩 붙은 잎을 하나씩 양손에 들고 부리나케 나무 밑으로 내려갔다.

고무兄의 아침 일과는 항상 화장실 가기부터 시작된다.
간단히 세수를 마치면 구수한 커피 한 잔을 앞에 놓고 아침 노동 계획을 짜는데,
날씨와 컨디션에 따라 하는 일이 달랐다.
앞 뒷마당 개 네 마리와 고양이 세 마리, 거위 두 마리, 닭 일곱 마리의 아침을 주고
텃밭의 작물에 물을 주는 거야 매일 거르지 않는 일이지만,
잡초를 뽑거나 거름주기, 벌레 잡기는 정기적으로 하는 일이 아니었기에
텃밭의 잡초와 벌레들은 언제 그 우악스런 손이 들이닥칠지 항상 불안해했으며
고무兄도 그 점을 이용하여 풀과 벌레의 번식을 적절히 조절하고 있었다.

어제도 고추밭에 물을 주다 유심히 살피던 고무兄이 슬쩍 한마디 했다.
'음...내일은 벌레를 잡아줘야겠어...'
이 말은 알아서 고추밭을 떠나라는 최후의 경고였으나
새로 이주한 흰노린재 일족은 새로 터를 잡은 이래로 한 번도 단속이 없었던 터라
한쪽 콧구멍으로 듣고 반대편 콧구멍으로 흘리고 말았다.

판매장 앞의 고구마밭까지 물주기를 마친 고무兄은 담배 한 개비를 붙여 물고
노린재 트랩을 집어들었다.
트랩 안에는 고추밭 초기에 이주했다가 거의 전멸한 흑노린재 일족의 미이라가 가득했고
이름 모를 애벌레가 목초액과 담뱃진이 섞인 물에서 썩어가는 노린재 시체 위를 기어 다니고 있었다.

고무兄이 다가가자 노린재 아가씨들이 일제히 인사를 했다.
이 아가씨들은 마을 끝에 살고 있어서
아까 잠깐 나오다 만 이장의 방송을 듣지 못한 것 같았다.
"안녕하세요? 고무오빠? 오늘도 날씨가 참 좋죠?"
고무兄은 대답 대신 아가씨들이 붙어있던 고춧대를 훑어 트랩 속에 아가씨들을 털어 넣었다.
"아악! 왜 그러세요? 엄마...!!!"

고무兄의 충실한 심복 왼손과 오른손
이제 훌륭한 전사로 자라난 삼일이와 통통이까지 가세한 진압팀은 물불 가릴 것이 없었다.
그 유명한 '월선리 고무농장 불법점거 흰노린재 소탕작전'이 시작된 것이었다.

흰노린재 아가씨들이 삽시간에 트랩 안으로 쓸려 들어가는 것을 본 다른 노린재들이 비상연락망을 가동했다.
항상 친하게 지내는 쉬파리 편대에 지원요청을 하고
아직 마을에 남아있는 흑노린재 어르신들께 살아남을 지혜를 구하고자 전령을 보냈으며
만 16세 이상의 젊은이들을 소집하여 전선으로 투입했다.

흰노린재군은 적이 나타났을 때 사용하는 가스를 마구 뿌리며 저항했지만
이상하게 효과가 없었다.
개중의 용감한 결사대원은 고무兄의 손 위에 올라 최대한 앞으로 나서며 가스를 뿜어댔다.
그럴 때마다 결사대는 고무兄의 손가락에 잡혀 바로 트랩으로 보내졌고
트랩 안에서 온몸이 독물에 녹아내리며 지르는 비명은 다른 결사대원의 기를 꺾기에 충분했다.
노린재군의 독가스가 통하지 않은 까닭은 바로 삼일이의 똥냄새 때문이란 걸 노린재군은 알 수 없었다.
고무兄이 진압작전 며칠 전부터 고추밭 주변의 삼일이 똥을 치우지 않고 방치하며
똥냄새로 방어막을 구축한 것을 한낱 노린재들이 어찌 알 수 있었겠는가?

경로당에서 놀던 노인들이 몸을 일으켜 도망할 곳을 찾았으나
이미 눈앞에는 삼일이의 날카로운 발톱이 다가와 있었다.
"오메...이 동네는 약도 안 치고 살기 좋은 데라고 하더니 이게 웬 날벼락이여?"
"그러게 말이지라...당숙이 오라고 해서 왔더니 여기도 난리가 부루스구먼요..."
"세상에 믿을 눔 없..." 하는 순간 삼일이의 두툼한 발이 날아들었다.
오랜 장기 친구가 한방에 고꾸라지는 것을 본 백발 성성한 노인이 장검을 빼들고 삼일이를 막아섰다.
"이눔아! 내가 이래 봬도 사마귀도 벤 역전의 노장이다. 어서 내 칼을 받아랏!"
삼일이가 빙긋 코웃음을 치더니 집게발톱 하나로 삽시간에 노인의 몸을 두 동강 냈다.
"나이 드시면 편하게 사셔야지...왜 나서고 그러셔?"

고무兄의 정규군과 통통이, 삼일이의 진압부대는 빠른 속도로 고추나무를 진압해 갔다.
아까부터 제일 높은 고추나무에 올라가 고무兄에게 협상을 시도하던 시민군 대표도 트랩 속에 갇혔다.
트랩 속에는 오래전에 행방불명 된 흑노린재 친척들의 시체가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었다.
"아이구 고모부...이게 웬일이요! 소식이 없더니 시체로 뵙게 되네요..."
목초액에 듬뿍 묻은 시체들은 부패하지 않고 원 모양을 유지하고 있어서
트랩 안에서 마지막까지 투쟁을 외치다 절명하던 순간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트랩 안은 곳곳에서 친척들의 시체를 찾은 흰노린재 일족의 대성통곡으로 가득 찼으나
위에서는 아랑곳없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마구 그들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고무兄이 잠시 오이잎을 살피는 사이에 쉬파리 편대가 날아와 공격을 시작했다.
쉬파리 편대는 요 며칠 사이에 극심한 폭염으로 전투기의 기름탱크가 폭발하여
날 수 있는 전투기를 다 모아봐도 고작 세 대밖에 안 되었다.
그래도 평소에 흰노린재군과의 의리를 생각하여 출격했는데
첫 공격을 한 쉬파리1호기는 삼일이의 앞발에 맞아 바로 추락했고
두 번째 공격기도 통통이의 말벌 잡는 솜씨에 당해 통통이의 위장으로 넘어갔으며
세 번째 편대장기도 고무兄의 발등에 기총소사하다가 공중에서 피격, 통째로 트랩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지원 온 전투기 병력이 삼 초도 안 되어 무너지는 것을 본 흰노린재군은
완전히 전의를 상실하고 퇴각하기 시작했으나 때는 이미 너무 늦어있었다.
위로 올라간 놈은 고무兄의 예리한 손가락에 잡혀 여지없이 트랩으로 들어갔고
아래로 내려간 놈은 통통이의 발에 짓눌렸으며
중간에서 어영부영하던 놈은 삼일이의 발톱에 온몸이 찢겨 바닥으로 우수수 떨어지고 있었다.

아줌마들로 구성된 간호부대가 적십자기를 펼치고 알이 붙은 잎을 지키려고 결사항전을 하고 있었다.
고무兄은 간호부대를 앞에 놓고 잠시 생각에 잠겼으나
곧 간호부대도 트랩 안으로 털려 내려갔고 잎에 붙은 알들도 말끔하게 지워져 버렸다.
"아! 정말 무서운 놈들이에요...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알들을 저렇게 손으로 문질러 버리다니..."
"그러기에 내가 뭐랬수? 벼룩잎벌레 터지는 소리가 나면 짐을 싸야 한다고 했잖우..."
"다 좀 더 먹고살려다 보니 그런 거 아니겠어요?"
"그래도 욕심부리지 말고 다른 곳으로 갔어야 했어요..."
아줌마들은 트랩 안에서 자신들에게 어떤 일이 닥칠지도 모르고 논쟁을 시작했다.

고무兄은 이제 진압작전이 거의 끝났다고 생각하고 휘파람을 불었다.
끝없는 살육에 눈이 벌게졌던 삼일이와 통통이도 피를 닦으며 고무兄 앞에 모였다.
"수고했다! 이 더위에 훈련한 보람이 있었다. 오늘은 특식을 배식할 것이다. 배불리 먹고 편히 쉬도록!"
견공부대는 이제 그늘로 돌아가고 고무兄은 뒤처리를 위해 밭에 남았다.

고무兄의 진압방식의 원칙은 본인의 손에 절대로 피를 묻히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트랩에 넣어 독가스로 죽이든 수장을 시키든 본인은 노린재 한 마리도 가벼이 여기지 않았다.
'하느님, 오늘은 주의 뜻대로 이들을 처리하겠나이다.
저는 그저 마개를 덮어 놓을 테니 주님의 힘으로 그들을 처단하소서.
성령의 불로 그들을 새로 태어나게 하소서.
아멘...'

고무兄은 트랩에 뚜껑을 덮어 볕이 잘 드는 곳에 두고 전장을 떠났다.

 

오늘의 뮤비... 

James Brown - 'I Feel g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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