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오늘의 사진일기

눈사람 실종사건

by Gomuband 2010. 1. 4.
728x90
반응형
고무兄이 잠을 깬 건 새벽 2시쯤이었다.
고무兄이 잠들자마자 자기 전에 읽었던 하루키의 난쟁이가  바로 공격을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 빨리 말을 하라고! 그래야 내가 네 여자를 갖는다고! -
고무兄은 등 뒤에 매달려 목을 조르며 보채는 난쟁이를 변기에 거꾸로 처박아 버리고 스스로 잠에서 깨어났다.
  - 하~ 그눔 시키...정말 거머리 같네... -

창밖의 외등이 훤해서 거실 불을 켜지 않아도 담배가 어디 있는지 정확히 알 수 있었다.
담배를 붙여 문 고무兄은 커피 물을 얹으려다 캔커피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
그제 호프집 알바 아가씨가 슬쩍 건넨 캔커피.
  - 새해 선물이야? -
그녀는 후후~하고 웃기만 했다.

빌라 밖으로 나오자 왜 다른 날보다 창문이 유난히 더 밝았는지 알 수 있었다.
눈...눈이 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눈 위에 캔커피를 내려놓고 우산을 가지고 나왔다.
눈 내리는 소리가 우산을 쓰다듬는다.
사각사각...
우산 밖으로 나간 담배연기가 눈과 맞서지 못하고 흩어졌다.
눈송이가 캔커피의 작은 구멍으로 빨려 들어갔다.
담배연기와 잘 섞인 눈송이를 마셨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그는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이제 그는 사람들 마음속에서 지워진 것 같았다.
일년에 한 번, 그와 함께 나타나곤 했던 영감이 있었다.
애들 가슴에 소박한 사랑을 심어주던 산타클로스 영감.
(이젠 닌텐도를 들고 나타나는 부자 영감으로 변했지만...)
그가 영감과 함께 나타날 때, 사람들은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탄성으로 그들을 맞았다.



그는 성탄절 아침...선물을 받았건, 받지 못했건, 아이건, 어른이건
모두를  환하게 반겨주곤 했다.
아이들은 저마다 다른 그의 모습을 보았다.
어른들도 저마다 다른 그의 모습을 보았다.
그러나 어떤 어른들은 그를 싫어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렇다고 그가 성탄절을 맞춰 다녀가는 것도 아니었다.
그는 언제건...맘 내키는 날 홀연히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다시 잠이 들었다.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았다.
난쟁이는 변기 속에서 질식사했음이 틀림없었다.
대신 소설의 줄거리를 잘 꾸며 보려고 애쓰는 고무兄 자신이 나타났다.
고무兄은 일러주는 아이디어를 노트에 적으라고 다그치는 자신의 도플갱어와 승강이를 벌였다.
  - 허참! 다 기억한다니까... -
  - 잠을 깨면 다 잊으면서... -
  - 기억할 수 있다고! -

느지막이 잠을 깬 고무兄은 도플갱어가 일러준 아이디어를 하나도 기억할 수 없었다.
창밖에서 두런두런 사람들 소리가 들렸다.
커튼 바깥이 온통 하얀색으로 변해있었다.
그가 온 것이다.



사람들은 이십 센티가 넘게 쌓인 눈을 길가로 밀어내고 있었다.
두텁게 내리는 눈은 사람들이 치운 자리에 다시 수북하게 내려앉았다.
비닐포대와 눈썰매를 든 아이들이 공원으로 올라가는 게 보였다.
경사가 급한 우리 마을엔 마을버스가 나타나지 않았다.
모두 종종걸음으로 언덕을 내려갔다.

  - 내가 그를 본 것이 언제쯤이었지? 그를 만들어 본 것은? -
  - 왜 요즘 아이들은 그를 만들지 않을까? -
  - 혹시 시골에선 볼 수 있지 않을까? -



고무兄은 카메라를 메고 외출하려던 발길을 돌려 본부로 돌아왔다.
신발 틈으로 들어오는 눈을 막을 재주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 겨울 등산 장비가 필요하겠어... -

오늘 같은 날은 버스 타고 능내 강변에 가야 했다.
아무도 밟지 않은 강변을 따라 천천히 걷다가
철길 옆 보리밥집에 들러 동동주 한잔 걸치고
또 걷다가...
저녁 기차를 타고 돌아오면 된다.
짧은 여행을 함께 할 사람들은 다 어디 간 거지?



고무兄은 천천히 112를 눌렀다.
  - 저~경찰이죠? 실종 신고를 하려고요. -
  - 누가 실종되셨죠? 가족인가요? -
  - 가족은 아니고요...좀 아는 분이에요. -
  - 실종된 분 성함은요? -
  - 눈...사...람... -
  - 성이 눈씨인가요? -
  - 네, 이름이 사람이고요. -
  - 그 분 주소와 연락처는요? -
  - 하늘 어딘가에 살고요...전화는 없어요... -
  - 네...잘 알겠습니다. 이분 찾아달라는 신고가 오늘만 해도 벌써 백 번째랍니다. -
 
모두 눈사람을 찾는 신고를 하는데...
왜 아무도 찾아내질 못할까?
그는 우리 어린 시절 기억 속에만 남아있기 때문일까?

Snowflakes
Snowflakes by Balakov 저작자 표시비영리

728x90
반응형

'오늘의 사진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091229  (6) 2010.01.09
눈사람 실종사건  (6) 2010.01.04
새해 고운 복 많이 지으십시오...^^  (8) 2009.12.31
고맙습니다...^^  (6) 2009.12.22

댓글6

  • BlogIcon zzamstop 2010.01.05 19:28

    부산에는 비가 제법 내렸습니다.
    먹고 살려니 겨울비를 맞고도 일을 해야합니다.
    서울에는 103년만에 대폭설이라고 연일 방송에서 떠들어데니
    여기서는 그림으로 감상만합니다.
    눈이 얼마나 얄궃은 장난끼를 발동해서 그 주위의 분들을
    눈치우기라는 대공사에 동참케 하는지....
    이번에 1층눈치우고 기냥 놀던 2층3층의 연립입주자간에
    시비가 붙었다고 하는군요.
    왜 1층만 눈치울 의무가 있느냐고 말입니다..
    아무튼 부산사람이 보니 하얀것이 보기 좋습니다..
    답글

    • BlogIcon Gomuband 2010.01.06 13:12 신고

      눈 치우는 데도 사람들 잔머리와 싸가지가 보이지요.
      이번엔 평소에 치우지 않던 사람들도
      안 나오고 못 배겼을 것입니다.
      눈 치우는 데 관심이 없던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냐~
      근처의 모든 눈이 다 그 집앞이나
      그 집 자동차를 둘러싸고 있습니다.
      봄이 되기 전엔 안 녹을듯...^^

  • BlogIcon 옥탑생활자 2010.01.06 11:50

    그러게요. 동네고 어디고 눈사람 찾아보기가 통 힘들데요. 제 방 옥상에 수북이 쌓인 눈으로 하나 세워볼까..ㅋ
    답글

    • BlogIcon Gomuband 2010.01.06 13:22 신고

      이번에 내린 눈도 잘 뭉쳐지지 않는다더군.
      눈 속에 수분이 적어서인가?
      퍼석퍼석하게 보이긴 하던데.
      물을 뿌려가며 뭉치면 된다니까 한번 시도해 보게.

      우리 동네 좋은 슬로프가 있으니
      스키나 썰매 있으면 삼겹살 사가지고 오게.
      썰매 타면서 소주나 한 잔!!!

  • BlogIcon 하늬바람 2010.01.10 17:15

    오호~
    난쟁이가 변기에 질식사할까봐
    변기를 뒤로 뒤집어 놓으셨네요. ㅎ
    눈구경 실컷 하셨지요?
    이곳은 춥기만하고 눈은 구경도 못했습니다.
    답글

    • BlogIcon Gomuband 2010.01.12 13:17 신고

      난 가끔 엉뚱한 생각도 해.
      중부지방에 내린 눈을 남쪽으로 퍼 나르면 얼마나 좋을까..
      가는 사이에 적당히 녹아 잘 뭉쳐질 텐데.
      남녘의 어린이들은 눈싸움을 해 볼 기회가 거의 없을 거야.
      눈사람을 굴리는 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