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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사진일기

함정을 파다

by Gomuband 2009. 7.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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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산길을 판 적이 있었다.
함정이라고 불리우던 작은 구덩이.
곰 같은 커다란 짐승을 통째로 잡는 덫이 아니고
사람의 발목을 잡는 덫이었다.
호박 구덩이만 하게 길을 파놓고
근처에 숨어있다가 누군가 빠지면
끽끽 거리며 도망가는 놀이.
놀이이긴 했지만
잘못 빠지면...
발목을 크게 삘 수도 있는 위험한 장난이었다.

기본 함정 설치 법...
동네 아이들이 전쟁놀이하러 다니는 산길을
한 자 깊이로 파고 가는 나뭇가지를 걸친 다음 풀을 뜯어다 덮거나
종이를 깔고 흙을 살살 뿌리면 준비 끝!
좀 지저분한 함정은...
구덩이 안쪽에 갖가지 오물을 듬뿍 넣어
빠진 애들의 발목을 냄새로 뒤덮이게 하는 방법.
조금 더 악랄한 함정은...
함정 안쪽 벽에 아카시 나뭇가지를 동그랗게 꽂아
빠진 아이들의 발목을 가시로 긁어 주는 법.

맨땅에 풀이 덮여있으면 의심을 받으니
풀이 좀 나있는 길 근처에 함정을 팠다.
함정을 파놓고 근처 덤불에 매복하고 있으면
동네에 놀러 나왔다가 우리가 없는 것을 확인한
적군(건넛마을 아이들)들이 산길을 따라 주욱 올라왔다.
여러 번 당한 아이들은 함정을 눈치 채고 살짝 뛰어넘어갔지만,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아이들은 온 동네에서 모아 온
개똥 더미에 빠져버린 한쪽 발을 절룩이며 개울가로 뛰아가곤했다.
파라는 호박구덩이는 안 파고
온 산길을 헤집어 놓고 다녔지만...
들통난 함정은 꼭 다시 메우고
비가 와도 길이 허물어 지지 않게 꽉꽉 다져놓는 게 우리 악동들의 불문율이었다.
 
뒷산에 오르는 길에서 흙을 파낸 흔적을 발견했다.
사람들이 산책하러 오르는 길인데...
길이 아니어도 흙은 지천에 널렸는데
길을 파내다니...
어디에 쓰려고 흙을 파냈는지는 모르겠으나
흙을 파냈으면 주변 흙을 끌어다 평평하게 다져
파낸 자국을 지워놓아야지
아무리 뒷산의 흙이 공짜라지만
그놈의 심보...참...

정말...아무 말 않고 살기 힘든 나라
우리나라 좋은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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