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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음악이야기 1- 어릴 때 우리집에서는...

by Gomuband 2005. 9.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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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운동에서...
우리 집에는 검은 피아노가 있었다.
집안에서 유일하게 피아노를 치는 분은 아버님이셨다.
아버님께서는 운동도 잘 하시고 사업도 잘 하시는 멋진 분이셨다.
함경도 북청이 고향이신 아버님께서는 서울에 유학와서 공부를 하셨다.
학생 때는 한강에서 스케이트를 즐겨 타셨는데,
운동을 마치고 나면 아무리 시장해도 전차비가 아까워서 명동까지 달려오셨단다.
왜냐하면...마포종점에서 타고오는 전차비와 호떡값이 같았기때문에...
명동에는 그 당시 중국인들의 음식점이 많았는데...
(내가 국민학교 때도 코스모스 백화점 건너의 명동입구에 몇 집 남아있었다.
공기가 들어간 중국호떡과 빵을 사먹은 기억이 난다.)
그들이 만들어 파는 쟁반만한 큰 호떡을 사드셨다는 이야기를 하시곤했다.
어버님께서는 일찍 집에 들어오시면 피아노를 치시며
'내 고향 남쪽바다~'란 노래를 부르곤 하셨다.
지금 생각해보니...
음악에 운동에 사업에...
정말 열심히 인생을 가꾸어 오신 분이셨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불광동으로 이사와서...
여러가지 이유로 아버님과 떨어져 살게되었다.
아버님 사업도 내리막길을 달리고 있었고...
모든 일들이 불투명한 가운데 우리는 새로 개발되는 갈현동 건너의 언덕배기로
새 집을 지어 이사를 했다.
검은 피아노는 여전히 안방에 있었다.
어머님께서는 내게 피아노를 가르치려하셨지만 난 그 큰 건반이 너무 싫었다.
마침 이모님께서 바이얼린을 하고계셨기에 난 일주일에 몇 번 레슨을 받게되었다.
작은 스즈끼바이얼린을 턱 밑에 괴고 깽깽깽~~...
내가 들어도 듣기싫은 소리에 연습이 점점 하기싫어졌다.
점점 집안이 기울면서 그 앙증맞은 바이얼린은
호만이란 초보교재 한 권도 떼지못하고 케이스에만 담겨져있게되었다.

*칸소네를 듣다
불광동에서 처음으로 전축에서 나오는 음악을 들었다.
커다란 빅터전축의 뚜껑을 열고 삼촌이 틀어주시던 음악들...
산레모가요제에 나온 '마음은 집시'와 '케세라케세라~~'하는 곡.
지금도 라디오에서 나오는 오래된 영화음악들...
음악인들이 '메모리'라고 부르는 많은 연주곡들을 그 당시에 듣기시작했던 것이다.
물론 벤춰스의 연주곡과 비틀즈도 삼촌이 즐겨 들으시는 음반이었다.
나는 커다란 스피커에서 나오는 부드러운 음악을 들으며
삼촌이 사놓으신 세계명작전집을 읽곤했다.
새로 생긴 동네라서 친구도 없었고, 마땅히 놀꺼리도 없었기에
책은 내게 가장 친한 친구가 되어주었다.
'소공자' '소공녀' 등이 꼭 들어있는 50권짜리 어린이용 명작전집은
이미 다 읽어버렸기에 삼촌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이다.
그 때 읽은 일본소설 중에...'나는 고양이다' '봇짱' 등의 제목이 생각난다.
'노인과 바다'란 소설을 읽을 차례가 되어 책을 펼치고 마루에 앉았는데
며칠이 지나도 영 책장이 넘어가질 않았다.
바닷가의 풍경과 어부들 이야기까지는 그런대로 지나가다가
노인이 바다로 나오는 부분이 되자 난 소설 속으로 빨려들어가서
같이 뜨거운 태양 밑을 헤메고 있었다.
며칠이 지나도 같은 자리에서 맴돈 기억이 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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