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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사진일기

20200430 - 휴업 67일째

by Gomuband 2020. 5.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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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이 열어준 편안한 세상이 끝난 게 국민학교 4학년 1학기 끝날 무렵.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여름방학은 산으로 들로 개울로 정신없이 놀러 다니면서 잘 보냈다.

갈현동 건너 언덕배기(주소는 불광동이다)에 살았기에

서오릉, 진관사, 북한산성, 연신내 상류의 수양관 뒷산까지 모두 우리의 놀이터였다.

점심으로 싸간 도시락 밥알을 바늘에 꿰어 던지면

금세 잘도 물고 올라오던 진관사 밑 개울의 버들치들.

 

2학기가 되어 교복을 가을 옷으로 입어야 했는데

교복을 안 사주네. (사립학교에 다녔기에 교복이 좀 많았다)

잉? 이게 무슨 일이야?

아... 난 그제야 우리집에 큰일이 생긴 걸 알 수 있었다.

 

외할머니께서 개학하고 한참 후에 춘추복을 사오셨는데

교복 속에 입는 흰 블라우스 소매를 창문틀의 녹슨 레일에 북북 문질러 버리고

다시는 그 학교에 가지 않았다.

 

어릴 때지만 내가 생각해도 고약한 성질머리가 있었다.

스웨터를 입고 손목에 맞게 소매를 접어주면

접은 소매 길이가 다르다고 신경질을 부리곤 했으니까.

잘 망했어. 잘 망했어.

그때 안 망했으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그 시간 이후로

난 3초만 생각하고 곧 잊는 게 버릇이 됐다.

길게 생각하면 절대 안 되는 괴로운 일이 너무 많았거든.

당장 중요하지 않은 웬만한 일은 그냥 넘어가곤 하는 것도 그때 생긴 버릇.

 

그런데 살다 보니

말 안 하고 넘어가면 병신 취급을 하네.

오빠야가 어떤 인간인지 잘 모르겠나 봐.

앞으론 바로 그 자리에서 뜨거운 맛을 좀 보게 해 줄게.

세상이 좋아지니까 별 것들이 다 위세를 떠네.

 

착하게 살려고 하는 사람 건드리는 건

천지사방 분간 못하는 병신들이 하는 짓이야. 알간?

 

 

기계도 쓰일 때가 있는지

페달에 밀려서 뒷방 신세였던 Behringer Vamp를 다시 꺼냈다.

녹음실이 있을 때야 앰프에 마이킹 녹음을 했으니까

라인녹음은 별로...

2002년에 샀으니 청년이 다 되었구나.

 

종일 매뉴얼 보면서 주물렀더니 제법 맘에 드는 소리가 나온다.

그래... 모든 건 만지는 사람 따라가는 거야.

이제 밤에도 마음 놓고 녹음할 수 있다.

기계 하나 더 있는데 그건 다음에 공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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