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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사진일기

20130310

by Gomuband 2013. 3.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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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무兄의 귀환

손목이 시큰한 걸 핑계로 기타 연습을 하다 말았다.
며칠 쉬다 보니 손가락이 다시 뻑뻑해져 재미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김칫국을 데워 밥을 말아 안주를 만들어놓고 넷북을 켰다.
처음엔 낮술 잔에 영화 한 편 띄워 일요일 오후를 흘려보낼 생각이었는데
손가락은 곰플레이어가 아니고 재즈 라디오 닷컴을 찾아 음악을 틀고 있었다.

아직 읽을 페이지가 많이 남은 재밌는 소설을 읽고 싶어서였겠지.

천명관은 '고령화 가족'에서 내가 애써 덮어두었던 '가족'이란 단어를 다시 끄집어내고 있었다.

'나의 삼촌 부루스 리'를 읽을 때
난 이 작가가 혹시 그걸 이야기하려는 게 아닐까? 하고 읽는 내내 전전긍긍했었는데
살짝 비켜가며 이야기를 마쳐주어서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했었다.

하지만...
'고령화 가족'을 한 장 한 장 넘겨가며 이번엔 피할 수 없으리라는 걸 알았다.

처음부터 나를 비롯한 내가 아는 수많은 사람이 소설 속의 캐릭터로 등장했고
내가 이게 최선이야...라고 생각한 방법으로 포장하여 고이 묻어두었던 아픔들이
활자잉크를 먹어치우며 하나하나 부활하여 뿌연 형태를 갖춰가고 있었다.

이런 제길슨!

태어날 때부터 잘 못 끼워진 단추는 좀처럼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우스꽝스런 모습으로 오랫동안 내 옷에 붙어있었다.
단추를 다시 끼울 수 없는 이상한 옷을 입고 매일 세상과 마주하는 어린이.

머리가 굵어지고 힘이 세지자
난 간신히 그 단추들을 몇 개 떼어낼 수 있었지만
단추들은 다시 엉뚱한 옷에 붙어 사생아를 만들어 냈다.
교복 단추가 런닝셔츠에 붙었다.

단추들은
작은 거짓말이 다른 거짓말을 부르고
다른 거짓말이 더 큰 거짓말을 부르는 진리를 충실히 따랐다.
작은 단추는 큰 단추에 복종했고
작은 단추가 모여 큰 단추로 변신했으며
새로운 변종으로 번식했다.

나는 힘닿는 대로 그들을 하나씩 붙들어
'이유'라는 부적을 하나씩 이마에 붙이고 손발을 꽁꽁 묶어
'망각'이라는 이름의 창고에 가두었고
틈이 날 때마다 창고에 새로 벽을 높고 두텁게 쌓아 그들이 고개도 내밀지 못하게 했다.

그래도...
내가 약해질 때마다 그들은 조금씩 땅굴을 뚫고 나와
나 여기 있는데...라고 내 뒷덜미를 톡톡 쳤고
그럴 때마다 난 커다란 낫으로 그 손모가지를 싹둑 자르곤 했지만
그들은 평생 탈옥을 포기하지 않았다.

난 손목을 잘라 소금을 뿌려두는 것에 지쳐 새로운 방법을 고안했다.
모든 걸 다 해결할 것처럼 보이던 방법은 아주 간단했다.
'이유'라는 부적을 '이해'라고 고쳐 써서 다시 붙여주는 것.

그러나...

'단추'는 아주 강력한 '강시'였다.
어떤 방법으로도 그들을 막을 수 없었다.
일단!
난 그들을 떠올리게 하는 것과 일절 만나지 않기로 했다.
한동안 효과가 있었다.

어느 날 그들에게서 밀사가 왔다.
모종의 거래를 하자는 것이었다.
내용인즉...
'이해'라는 부적을 '용서'라고 바꿔 써주면 다시는 나를 괴롭히지 않겠다고 했다.

용서라...용서...
이해와 용서의 다른 점은?
좀 더 생각해 보겠다고 밀사를 돌려보냈다.

마음속 아주 깊은 곳에 있는 '용서'창고로 갔다.
자물통이 굳게 잠겨있었다.
열쇠가 뻑뻑하니 잘 들어가지도 않았다.
이 열쇠를 한 번도 쓰지 않았었나?
간신히 문을 열고 들어가니 아주 오래된 먼지 냄새가 가득했다.
수염을 길게 기른 '용서' 어르신들이 힘없이 손을 들어 아는 체를 했다.
모두 구면이지만 내가 그들을 가둔 지 꽤 되어 누가 누군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오래 머무르다간 괜히 마음이 약해질 것 같아 휙 돌아 나오는데
누군가 한마디 했다.
"우린 어차피 나갈 몸이야. 하루라도 빨리 내보내 주는 게 유지비도 안 들고 좋지!"

천명관은 '고령화 가족'으로 내 창고의 초병들을 무력화시켰다.
그 가족들은 펜이 칼보다 강하다는 걸 굳게 믿고
주인이 시키는 대로 우리 창고를 공략한 것 같다.

내가 '고집'이란 중화기를 투입하고 알코올을 마구 부으며 버티기에 아직 문을 열지 못했지만
그 가족은 이미 특공대를 '용서'창고로 보냈다.

'용서'창고가 열리는 날
'망각'창고의 단추들은 자유를 얻으리......

 

오늘의 뮤비...

George Benson - "This Masquera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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