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Life/Writing

초설은 무슨...멸치지!

by Gomuband 2011. 4. 7.
반응형
거제도에서 가끔 택배가 오는데
상자 모양만 봐도 누가 보냈는지 안다.
올해도 햇멸치가 마르는 유 월말이면
서너 달 볶아 먹을 마른 멸치가 올 것이고
난 문자로 욕을 해댈 것이다.
'넌 도미 처먹고 난 멸치만 볶아 먹냐? 이 썩을 놈아 고맙다^^'


신세 진 분들께 마른 멸치나 석화로 인사를 하는 놈.
조 정제.

본인은 자신을 '초설'이라고 부르고
사람들은 '정제'라고 부르며
스님들은 '잡놈'
나는 '멸치'라고 부른다.

기타 치며 사는 형편에 세 끼 먹는 게 버거워 두 끼로 줄이고
소비를 줄이라는 가카의 말씀에 반찬도 두 가지로 줄였는데
매일 밥상에서 빠지지 않는 게
바로 멸치볶음이다.

멸치 볶음과 신 김치만 있으면
어느 산골짝, 어느 바닷가에 있어도
쌀보리 듬뿍 섞은 꼬슬꼬슬한 밥을 맛지게 즐긴다.
단, 내가 볶은 멸치여야 하지.

멸치 정제 놈을 본 건 몇 년 전인데
이놈이 시를 쓴다는 걸 안건 얼마 되지 않았다.
웹에 카페를 만들어 잡문을 끼적끼적 쓰고
인터넷에서 욕을 쏟아내는 방송을 하며
천지사방 돌아다닌다는 것만 알았지
시를 쓴다는 건 정말 상상도 못했고
저 양아치스러운 인간이 마음으로 글을 적는다는 게
도대체 이해가 되질 않았다.

거제에서 만나도 눈 한 번 제대로 맞추지 않고
바깥으로만 빙빙 돌던 멸치와 가까워진 건
멸치가 만행이라고 부르는 난장 여행과
서울에 붙어 있지 못하는 내 역마살 덕분이다.

자주 가던 거제의 지인 댁이 불편해져
발길을 끊고 호남으로 빙빙 돌 무렵
멸치와 난 갑수의 함평 갑도예에서 다시 만났다.
이박삼일...
멸치에게 연기를 시키고 작은 영화를 찍었다.



작년 겨울.
난 바다낚시로만 연명하자는 목표를 세우고
서해를 거쳐 거제까지 내려갔다.
거제에선 꽤 고생하며 며칠 버텼는데
멸치가 계속 전화를 해댔다.
"아니 왜 집 놔두고 차에서 자요? 빨리 와욧!"
까칠한 멸치 성격과 혀 도는 대로 내뱉는 언행이 못마땅했던 나였지만
슬리핑백 안으로 파고드는 추위가 더 무서웠다.
멸치네 집으로 가서 동거를 시작했다.

멸치는 생각대로 깔끔하고 집요했다.
내가 바닷가에 다녀와 모래라도 떨구는 날엔 쫓아다니며 비질을 해댔다.
아침엔 꼭 밥을 먹어야 했고
테이블에 담뱃재라도 떨어질까 전전긍긍하며 날 감시했다.
내가 담배를 물고 요리를 하면 멸치는 아예 쳐다보질 않았다.
멸치의 결벽증에 내가 복수하는 유일한 방법이었으니까.

어느 날.
호래기를 잡아와 데쳐 먹고 술이 얼큰 해있는데
멸치가 날 보고 더 내려놓고 세상에 봉사하며 살자고 했다.
난 고래고래 소릴 질렀다.
아니 얼마나 더 폐를 끼치며 살잔 말이냐 이 미친 눔아...
멸치는 깜짝 놀라 항상 앉는 자기 자리로 가서 담배만 피워댔다.
난 멸치가 차비도 주지 않는 공연이나 행사를 만행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으로 화장시켜 돌아다니는 게 싫었다.
특히 내가 아는 사람들을 만나는 게 싫었다.
내가 아는 이들은 마음은 부자여도 살림은 어려운 이들이었기 때문이다.
멸치는 그저 사람이 그리워서 다닌다는 걸 난 몰랐다.

보름 후, 다시 거제로 갔다.
멸치는 내가 지난번에 소릴 질러대서 울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래? 빙신같이 울긴...'
그날 밤.
난 자다 말고 방에서 나와 멸치의 블로그를 천천히 읽었다.

멸치는 세상을 사랑하고 있었다.
멸치는 사람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여자 앞에선 말도 제대로 못 하면서 따뜻한 사랑을 기다리고 있었다.
멸치의 글 속엔 진솔한 마음이 있었다. 
난 멸치의 글 앞에서 초라해졌다. 
멸치만큼 진실하게 살지 않았기 때문이다.

멸치가 글을 모아 서울로 왔다.
내일 편집자를 만난단다.
멸치의 발가벗은 책에 실을 글을 하나 쓰라는데
난 엉거주춤한 글 밖에 쓸 수가 없다.
그처럼 발가벗을 용기가 없어서......


멸치의 첫 시집 출간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내 욕을 많이 썼다고 하던데
다 거둬들여 불태움이 마땅하리라.



반응형

'Life > Writing'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20418  (4) 2012.04.18
바람  (2) 2011.02.24
오징어와 춤을...6  (2) 2010.0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