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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Recording

<컬쳐뉴스에서 옮깁니다> 안석희님의 데자부 새 음반 ' 나엠' 이야기

by Gomuband 2007. 1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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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칼럼

견고한 기타 빛나는 보컬이 빚어내는
[음반리뷰] 나엠NaM 《LatinM》
2007-12-03 오전 10:49:52         
[안석희 _ 작곡가]
 
《LatinM》의 자켓 사진
▲ 《LatinM》의 자켓 사진

나엠NaM의 첫 음반 《LatinaM》이 나왔다. 나엠은 우리에게 생소한 이름이지만 2001년부터 듀엣 데자부로 활동해온 꽤 긴 경력을 가진 팀이다. 데자부는 노래하는 나엠과 기타 연주자인 정재영으로 이루어진 혼성 듀오로 샹송, 칸소네, 라틴 등 다양한 장르의 월드뮤직을 연주한다. 지난 몇 년간의 모색을 거쳐 2006년부터 홍대 앞 클럽 빵과 프리마켓 그리고 인천의 클럽 루비살롱에서 정기적으로 라이브 공연을 해오다 이번에 루비살롱레코드와 손을 잡고 활동 7년 만에 첫 음반을 냈다. 이번 음반에서는 주로 라틴 음악의 명곡 11곡을 골라 담았다. 이미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본 추억의 멜로디지만 그녀의 탁월한 목소리는 이 추억을 오늘 이 자리로 새롭게 가져온다.  

너무나 잘 알려진 <베사메무초 Bésame mucho - 나에게 키스해줘>부터 고요한 밤의 살롱의 문이 열린다. 흥겨운 마리아치 대신 외로운 기타주자 한 사람이 그녀의 뒤를 받친다. 오직 어쿠스틱 기타 한 대와 나엠의 목소리만으로 풀어가는 이 라틴음악의 향연이 지루하지 않은 것은 전적으로 나엠의 뛰어난 가창력 때문이다.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노래를 다시 부른다는 건 양날의 검이다. 자칫 평범한 리메이크가 되기 쉬운 노래들을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끌어가는 그녀의 보컬이 보석처럼 빛난다. 라틴 음악을 소화할 때 난제의 하나인 원어 발음 문제도 그녀의 발목을 잡지 못한다. 뒤를 받치는 기타 소리와 목소리의 균형도 나무랄 데 없다. 연주가 아니라 견고한 반주를 지향한 기타의 음색은 소박하고 꾸밈없다.

이러한 편성의 뒤에는 녹음을 맡은 고무밴드의 김영주가 있다. 어쿠스틱 기타연주 그룹인 고무밴드는 1979년 미 8군 밴드의 기타 연주자로 데뷔한 이래 지금까지 수없는 음악작업을 해온 베테랑 김영주가 결성한 팀이다.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2005년, 2006년 발표한 디지털 앨범은 미국의 다운로드 사이트 뉴에이지(Newage)의 솔로 연주 부분에서 23주간 연속 1위를 할 정도로 성과를 거두었다. 이러한 김영주의 녹음 지휘 아래 만들어진 음반이니 만큼 그 진정성의 깊이가 더해진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음반의 사운드는 절제된 기타 연주와 탁월한 보컬에 한층 빛을 더한다.  

월드뮤직은 그 말이 생겨나게 된 상업적 배경에도 불구하고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용어가 되었다. (월드뮤직은 1987년 영국 런던의 소규모 음반사들이 영미권 주류 음악을 제외한 3세계의 다양한 음악을 전시하고 판매하고자 정한 이름이다. 90년대 중반 이후 음악학자들과 음악관계자들이 모여 월드뮤직의 정의와 용어의 타당성을 이야기했지만 다른 대안이 나오지는 않았다고 한다.) 영미권을 제외한 세계 각국의 현대화된 민속음악으로 그 뜻이 조금 더 확장된 게 변화라면 변화일까. 90년대 중후반 재즈 붐에 이어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의 성공을 기점으로 미디어의 월드뮤직 프로그램과 수준 높은 안내서의 출반에 힘입어 월드뮤직은 우리나라 청취자들에게도 잘 알려진 장르의 하나가 되었다. 월드뮤직의 확산을 문화적 다양성의 확대로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있고 또 다른 외래음악의 도입으로 바라보는 관점도 있다. 최근 잦아진 퓨전 국악의 작업을 월드뮤직화로 바라보는 시각도 있을 터이다.

지난 리뷰에서 다룬 윈디시티같은 레게 밴드의 작업들이 호평을 받고 있고,([윈드시티 음반리뷰 "촌사람의 전율 혹은 감동"[다시보기]) 다양한 퓨전 국악 밴드의 질 높은 성과들과 더불어 이번 나엠의 음반은 월드뮤직의 흐름이 우리나라 대중음악계의 의미 있는 한 갈래로 안착할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음반은 5, 60년대 이후 우리나라 대중음악 전통의 한 줄기를 가장 새롭게 복원해냈다는 점에서 가장 큰 의미를 둘 수 있다. 현인의 베사메무초를 기억하는 세대와 홍대 앞 클럽의 젊은 세대가 함께 즐길 수 있는 고리를 찾았다는 건 엄청난 일이 아닌가.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이번 음반에서 연주를 맡은 정재영이 부산의 노래운동 그룹이었던 노래야 나오너라의 출신이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최초의 노래운동 팀인 새벽은 이미 80년대 중반 남미의 노래운동에 주목했었고 빅토르 하라와 소사, 유팡키 등을 일찍부터 소개했던 만큼 라틴음악은 친밀한 장르의 하나였다. 초기 노래운동에서 클래식 기타의 빈번한 사용이나 <대결>같은 몇 몇 노래에 그 영향을 찾아볼 수 있다. 그가 인터넷에 올린 한 글에서 남미의 노래운동인 누에바 깐시온을 언급한 점을 볼 때 이러한 영향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미루어 짐작해볼 수 있다.

90년대 이후 노래운동은 폭 넓게 분화되었다. 긴 유학생활을 마치고 최근 재즈음반을 낸 강은영처럼 장르의 제약을 훌쩍 넘어서거나 조약골, 박창근처럼 새로운 방식과 주제를 가지고 활동하는 예도 있다. 이 음반은 이러한 다양한 스펙트럼에 또 한 축을 더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진정성과 기량을 가진 창작자들을 만나는 일은 늘 반갑다. 나는 이들을 한 자리에 모으는 새로운 기획이 가능하지 않을까 조심스레 점쳐본다. 더불어 이러한 음악을 반기는 새로운 수용자 층도 함께 모일 수 있지 않겠는가.

나엠이 이미 공연에서 새로운 노래들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라틴이 아닌 또 다른 언어를 익히고 리메이크가 아닌 창작곡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다음 음반을 더 많이 기대하는 이유다. 이 겨울 진정성을 가진 뛰어난 음악인을 발견할 수 있어 반갑다. ‘스스로 평생을 두고 노래할 사람이라 생각하기에 유명해지는 걸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나엠을 소개하는 글이 더 반갑다. 올 12월, 선택을 닥달하는 로고송의 홍수와  행복을 강요하는 캐롤을 피하려는 사람들에게 권한다.




안석희 _ 작곡가, 노리단 예술감독유인혁이란 이름으로 오랫동안 노래를 만들었다. 지금은 하자센터 노리단Noridan에서 예술감독을 맡고 있다. 나무를 깎고 플라스틱 파이프를 자르고 쇠를 갈아서 악기를 만드는 일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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