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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Writing

생각날 때마다 쓰는 소설...She & He

by Gomuband 2010. 4. 21.

여자 1

그는 내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어 '어디야?'라고 묻지 않았어.
나도 구태여 뭘 하고 있었어요. 어디에 있어요. 답하지 않았지.
우린
'올래?...내가 갈까?'로 시작하여
'응. 몇 시에.'로 통화를 마치곤 했어.

전화를 건 대개의 사람은 상대편이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궁금해 해.
왜?
혹시 내가 네가 가지 않았으면 하는 장소에서 네가 참을 수 없는 짓을 하고 있을까 봐?
네가 항상 영상통화를 한다면 내가 어디에 있는지 대충 알 수 있겠지만
산발한 머리로 변기에 앉은 모습을 남친에게 보이고 싶은 여자가 어디 있겠니.
너는 나를 오줌도 안 누는 깔끔한 숙녀로 기억하고 싶겠지만
나도 너랑 똑같이 똥 누고, 남이 안 볼 때 코딱지 파는 인간이라고...
신경 꺼.

아무튼...그래서 첨단 휴대폰의 영상통화 기능은 무용지물이 된 거 같아.
아! 내 친구들에 의하면
시골에 계신 부모님께 재롱떠는 아이들의 얼굴을 보여드릴 때와
항상 다음 날 새벽에 귀가하는 오입쟁이 남편을 감시할 때는 쓸만하다고 들었네.
ㅋㅋ...그러나 세상은 니네보다 훨씬 영악해!
요새 룸살롱은 손님의 알리바이를 위해 사무실처럼 꾸민 곳도 있거든.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는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한 번도 묻지 않았네.
내가 아무리 생각 없이 사는 여자처럼 보여도 한 번쯤 물어볼 만도 한데
묻지 않는다는 건 뭘 뜻할까?
궁금하지도 않다는 걸까?
그럼 내가 그를 만날 때 쓰는 적지 않은 돈이 어떻게 내 수중에 흘러왔는지도
궁금하지 않겠군.
그건 모르는 게 좋겠지.

남자 1

"우리 요새 너무 자주 하는 거 아냐?"
난 축 늘어져 깔딱깔딱 숨을 몰아쉬고 있는 물건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여자 손끝의 독한 생담배 연기가 겨드랑이 사이로 올라왔다.
"뭘?"
"그 거."
"그 거?"
"응."
커튼 사이로 바람이 새어들었다.
"뭐 좀 먹자."

여자가 내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고 욕실로 들어갔다.
난 여자의 노란 필터 달린 담배를 천천히 비벼 껐다.
커튼을 반쯤 열고 창가에 섰다.
봄이 뽀얗게 산을 감싸고 강물 위로 내려오고 있었다.
방충망 틈으로 들어온 바람이 시원하게 알몸을 스쳤다.
모텔 주차장에서 나온 차가 산굽이를 돌아갔다.
객실을 청소하는 소리가 복도를 자그맣게 울렸다.

여자는 샤워를 좋아했다.
따뜻한 물줄기를 얼굴에 맞으며 고개를 뒤로 젖히고 있었다.
여자를 가볍게 뒤에서 안았다.
여자의 눈가를 타고 흐른 물방울이 눈물처럼 선을 그렸다.
따뜻한 물이 여자와 내 몸 사이의 빈 곳을 타고 흘렀다.
수증기를 통과한 빛이 여자의 가슴에 막혀 욕실 벽에 도톰한 실루엣을 만들었다.
여자의 가슴 밑에서 작은 새의 팔딱거림이 느껴졌다.
"날 사랑해요?"
대답 대신 팔에 힘을 주었다.
"내 몸을 사랑하는 게 아니고?"
충혈되던 내 몸이 수그러들기 시작했다.   
희수도 같은 얘기를 했었지.
말을 하고 난 후...
내가 자기를 여자 사람으로 좋아하는지
여자로 좋아하는지 고민하다 절교를 선언했지.
난 여자 사람으로 좋아했는데...

여자 2

아참, 그저께 명희 왔었어.
응? 그래. 그 명희...뭐? 발 끊은 지 일 년 됐다고? 여긴 자주 오는데...
돈? 그럼...꽤 되지...너한테도 그랬다고? 이젠 아주 사기를 치고 다니는구나...
ㅋ...좁아터진 길로 차를 끌고 들어왔더라고. 놈팽이도 하나 달고.
뭐?...아냐. 키 크던데...작년에 그놈 아냐.
암튼, 점심 먹고 창가에 앉아 밑에 내려다보면서 멍때리고 있는데
시장 길로 시커먼 차가 비적비적 들어오는 거야.
그래서 속으로, '요샌 시장에 올 때도 저런 차를 타고 다니냐? 미친 것들...'하고
욕하면서 쳐다보고 있었어.
가게 밑까지 오더니 차가 서더라고...
그래서 난 혹시 카지노 정 사장이 차 바꿨다고 자랑하러 왔나 싶어 창문을 열고 내다봤지.
운전석에서 남자가 나와 차 문을 열더니 여자 손을 잡고 내리는 걸 도와주더라고.
여자가 아주 힘겹게 차에서 내리더니 까치발로 남자 볼에 뽀뽀를 하는 거야.
'아주 영화를 찍어요, 영화를...미친 것들...'하고 설거지하러 들어가려는데
그 여자가 가게 계단입구로 걸어오더라고.
그래서 난 그 여자가 계단을 다 올라올 때까지 기다렸지.
여자가 문을 열고 선글라스를 벗으면서 배시시 쪼개더라.
처음에 난 누군지 몰랐어. 근데 자세히 보니 명희더라고.
그래...다 고쳤더라고. 완전히 딴 년 됐어.
근데 그 년이 뭘 입고 왔는지 아니?
이 더운 날 모피를 입고 온 거야. 미친년.
그러더니 내 앞에서 뒤로 돌아 코트를 벗는 거야.
나보고 옷을 좀 받아달라는 거지.
그러면서 '요새 날이 좀 차서...근데 나와보니 덥네.' 하더라.
난 너무 웃겨서 암말도 않고 코트를 받아 의자 등받이에 걸쳐줬지.
그랬더니 그 년이 '거기 걸치지 말고 좀 걸어줘. 옷걸이 받쳐서.' 하더라.
그래서 개털 코트 분부대로 걸어주고 명희 앞에 손을 내밀며
'사모님. 범털 되셨네요. 살만하시니 내 돈이나 좀 갚으세요.' 했더니.
그년이 갑자기 비굴모드로 돌변하더라.
이제 작업 시작해서 현금이 없다나 뭐라나...
그래서 놈팽이가 차 세우고 올라올 때까지 싫컷 욕해줬다.
그 년이 원래 육정엔 정신 못 차리 잖니...
그래...옛날에도 그랬지...지난달에도 딴 눔이랑 왔었다니까...어우 미친년!

어젠 또 혜자가 왔었어요.
있잖아...보험 하는 애. 그래...좀 뚱뚱하고...
테이블에 앉더니 아이폰을 딱 꺼내놓더라.
그래서 내가
"전화기 또 바꿨네...요새 살 만한 가봐." 그랬더니.
아주 건방진 얼굴로 "응...이 거 알아?" 그러더라고.
그래서 내가 내 아이폰 지포 라이터 앱으로 담뱃불 붙이는 마술을 보여줬지.
그랬더니 눈이 호두만하게 커지더라.
그 년은 내가 아이폰 예약하고 꼭두새벽부터 줄서서 받은 사람인 줄은 몰랐던 거지.
아이 귀 따거! 소리 지르지 마 이년아...그래 농담이고...
내가 혜자한테 근처 놈팽이 찾는 어플을 받아서 가르쳐줬더니
좋아서 입이 헤~벌어지더라.
하여튼 다 늙은 년들이 밝히기는...
뭐? 너도 샀다고? 넌 왜 샀니? 테레비도 안 나오는데...
맨날 전화질하고 문자만 날리는 년이 아이폰은 왜 산 거야...
하여튼 이 년들 속을 알 수가 없다니까.

남자 2

남자 사람은 저녁스케치 939를 좋아했다.
남자 사람은 해거름의 허기짐을 좋아했고,
그 허기짐을 아스라하게 채워주는 건조한 여자 사람의 목소리를 사랑했다.
남자 사람은 하늘을 제대로 보려고 방바닥으로 내려앉았다.
노을을 머금은 하늘엔 통신선과 전선이 어지럽게 지나가고 있었다.
창틀에 걸린 교회 간판이 눈에 거슬린 남자 사람은 허리를 조금 더 숙였다.
건조한 낮을 휘젓고 다니던 먼지가 창으로 밀려들어 남자 사람의 가슴에 쌓였다.
독한 술과 레몬의 신맛이 남자 사람을 보챘다.
기다려야 돼.
문자가 왔다.

남자 사람은 왼쪽 어깨에 카메라 가방을 걸고 언덕을 걸어 내려갔다.
모두 서울을 탈출한 연휴...길에선 사람 냄새를 맡을 수 없었다.
홍대로 가는 버스엔 어린 여자 사람 둘만 타고있었다.
미니스커트를 입은 여자 사람 둘.
여자 사람들은 버스 맨 뒤에 앉아 다리를 꼬고 문자질에 빠져있다.
남자 사람은 기사 머리 위의 룸미러로 여자 사람들의 다리를 가끔 훔쳐보았다.

남자 사람은 초저녁 이른 시간 바의 문을 열 때 흘러나오는 냄새를 좋아했다.
뭔가 발효한듯한 뭔가 불륜적인 ...
키핑해둔 보드카를 따라 단숨에 털어 넣은 남자 사람은
그동안 늘어난 폴라로이드 사진들을 천천히 훑었다.
바 주인이 취미로 찍어 붙인 사진이 벽 하나를 가득 덮고 기둥을 타고 넘어가고 있었다.
요새 부쩍 서양 남자 사람과 한국 여자 사람 커플들의 사진이 늘어났다.
서양 여자 사람과 한국 남자 사람 커플 사진은 예전부터 많지 앟았다.

칵테일 우산을 손가락에 끼고 있는 여자 사람 사진이 있었다.
치켜 깎은 머리스타일에서 마력이 후광처럼 뻗어나오고 있었다.
남자 사람은 의자를 당겨 여자 사람의 사진을 코앞에 두고 찬찬히 들여다 보았다.
가느다란 목덜미 끝의 흰 셔츠가 부드런 선을 그리면서 가슴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선은 가슴이 최대한 허락한 세 번째 단추에서 멈춰있었다.
보라색 머플러가 V라인 위에서 동심원을 만들며 소용돌이 치고 있었다.
보드카는 남자 사람의 뻑뻑하던 눈에 물기를 만들었다.

문이 열리면서 라일락 향기가 훅 스며 들어왔다.
실루엣의 여자 사람이 천천히 남자 사람 곁을 지나 바에 앉았다.
여자 사람이 향이에게 눈인사를 하고 키핑해놓은 곳을 가리켰다.
여자 사람이 큰 컵에 진빔과 코카콜라를 따르고 얼음을 가득 채웠다.
여자 사람은 잔을 가볍게 들어 남자 사람에게 건배를 했다.
여자 사람이 남은 술을 모두 따라 한 잔 더 진빔콕을 만들었다.
여자 사람도 남자 사람도 남은 술을 모두 툭툭 털어 넣었다.

여자 사람의 손에서 솟은 연기가 여자 사람의 머리칼을 스치고
갓등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향이가 보드카 병을 치우자 남자 사람은 데낄라 두 잔을 주문했다.
향이가 잔을 가지런히 놓고 8부 정도 술을 채워 여자 사람에게 밀어주었다.
여자 사람이 레몬 조각을 하나 집어 주었다. 쳐다 보지도 않고...
남자 사람이 여자 사람의 손바닥에 소금을 뿌려 주었다. 쳐다 보지도 않고...
여자 사람과 남자 사람은 거푸 석 잔을 비워냈다.
향이가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여자 사람과 남자 사람이 건배하는 모습을 찍었다.
향이가 사진을 내밀었다.
사진 속의 남자 사람과 여자 사람은 다른 곳을 보며 건배를 하고 있었다.

남자 사람과 여자 사람은 바에서 보이지 않는 구석으로 가서 가볍게 손을 잡았다.
서로 다른 곳을 보며 한 리듬에 몸을 맡겼다.
향이가 볼륨을 조금 크게 올렸다.
여자 사람이 남자 사람의 어깨에 손을 얹고 가볍게 이마를 기댔다.
향이가 바에서 상반신을 내밀고 남자 사람을 보고 있었다.
향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 사람은 여자 사람을 가볍게 안고 춤을 추기 시작했다.
남자 사람은 여자 사람의 눈을 외면한 채 여자 사람에게 키스를 했다.
여자 사람은 눈을 감았다.
향이가 볼륨을 더 크게 올렸다.
남자 사람이 왼손으로 카메라 가방을 천천히 열었다.
남자 사람이 여자 사람의 혀를 강하게 빨아당겼다.
여자 사람이 남자 사람의 몸에 강하게 밀착했다.
남자 사람의 왼손 검지가 가볍게 움직였다.
여자 사람이 잠깐 눈을 떴다가 다시 감고 천천히 무너져 내렸다.
향이가 바 문을 잠갔다.
남자 사람이 여자 사람의 허리춤에 대고 있던 손을 뗐다.
여자 사람의 허리 구멍에서 나온 붉은 시럽이 다리를 타고 바닥으로 번졌다.
남자 사람은 여자 사람을 바닥에 뉘었다.
향이가 여자 사람과 바닥의 시럽을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찍었다.
향이가 문자를 찍었다.

'끝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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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 서태호 2010.04.23 14:27

    한편의드라마입니다..
    뮤지션을 그만두시고 글써서 책나도 제법펄려서 먹고 사시겠습니다.
    작품의 전개가 뛰어나십니다..
    요즘은 어찌지나시는지..
    근황이 궁금하기도 하고 그럽니다..
    답글

    • BlogIcon Gomuband 2010.04.23 14:35 신고

      이궁...과찬이십니다.
      재주 많은 눔이 밥 굶는다고 했습니다.
      그저 음악 만들기 싫어서
      연기 피우는 걸로 봐주십시오.
      요샌...
      그동안 신세진 분들께 조금씩 힘 닿는 대로
      보은행진 중입니다.
      태호님께도 보은하러 가야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