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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Mo' Better Blues’ 감상문

by Gomuband 2016. 1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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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다음영화 http://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11365

 

 

드디어 ‘Mo' Better Blues’를 봤다

 워낙 영화를 좋아해서 예술영화나 음악영화가 영화가 들어오면 멀리 있는 극장도 기쁜 마음으로 달려가서 보곤 했는데, ‘Mo' Better Blues’는 클럽에서 밤 새워 일할 때 나온 영화라 못 보고 지나간 게 많이 아쉬웠다. 물론 비디오테이프나 파일로 언제든지 볼 수 있었지만 극장의 커다란 사운드와 화면이 주는 감동은 TV가 아무리 크다고 해도 절대 따라가지 못해서, 이번처럼 영화나 책의 감상문을 쓸 기회가 생기지 않으면 좀처럼 그렇게 하지 않는다.

 

 재즈음악사 강의를 들으며 기라성 같은 아티스트들의 삶을 주제로 하거나 재즈를 다룬 영화를 많이 알게 되어 겨울방학 때 차례차례 찾아서 볼 계획이었는데, ‘Mo' Better Blues’ 볼 기회를 앞당겨주신 교수님께 감사드린다.


영화걸출한 음악을 선사하다
 매일 아침 8.

오래 전부터 습관처럼 틀어놓는 FM라디오에선 ‘Mo' Better Blues’가 흐른다.

! 이제 새로운 날의 시작이야. 오늘도 잘~하고 와...^^’라고 말해 주는듯한 담담한 톤의 트럼펫 소리.

반짝반짝하게 광을 내지 않았을 것 같은 오래된 악기 소리는 언제 들어도 정겹고 따뜻하다.

유명해진 재즈음악이 많지만 이 곡이 유난히 마음에 와 닿는 이유가 무엇일까?

덜 다듬어 진 것 같은 사운드? 부드럽게 흐르는 코드 진행?

 

 영화에 나왔던 많은 곡들은 영화가 준 감동에 실려 사람들에게 남아있다.

영상의 힘이 음악을 받쳐주고 있는 부분이 워낙 커서 다른 장면에 그 곡을 붙이거나 음악만 따로 떼어놓고 들어보면 영화에 실려 있을 때와 전혀 다른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영화를 보기 전에 이 음악이 먼저 좋아진 이유를 생각해 보다가, 난 이 곡의 작곡가가 사람들에게 전하려한 의도가 그대로 자연스럽게 전해졌기 때문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나도 곡을 쓰고 연주하고 믹싱 할 때 그 부분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으니까.

 

 고등학교 밴드부와 군악대를 거친 내게 덴젤 워싱턴과 웨슬리 스나입스의 연주하는 장면은 정말 훌륭했다고 생각한다. 악기의 구조와 연주법을 모르는 상태에서는 절대 그런 멋진 싱크를 연기해낼 수 없기 때문이다. 감독이 영상의 완성도를 위해 레슨을 권했을 수도 있지만, 지금은 두 사람 다 세계적인 배우가 되어있는 걸 볼 때, 멋진 연주 장면은 그들의 연기에 대한 투철한 프로의식이 만들어냈다고 본다.

 

 영화를 다 보고나서 우리나라의 음악영화 즐거운 인생이 생각났다. 지금까지 나온 한국의 음악영화중 연주와 줄거리에서 고라고 생각되는 따뜻한 영화, 지금도 깨지지 않고 내 가슴속에 있는 이글스같은 밴드를 만들고 싶은 꿈을 계속 지니게 해영화.


영화는 말하지 않았지만, 숨어 있는 것은 많다

 ‘Mo' Better Blues’의 음악을 담당한 브랜포드 마샬리스 쿼텟과 ‘Mo' Better Blues’의 트럼펫을 연주한 테렌스 블랜차드는 국의 유명한 아티스트들이다.

브랜포드 마샬리스는 정통 재즈-비밥 복구운동을 펼치는 걸출한 트럼페터 윈튼 마샬리스의 친형이다. 뉴올리언스 재즈의 거장 피아니스트 앨리스 마샬리스와 그의 네 아들(브랜포드, 윈턴, 델피요, 제이슨 마샬리스)은 마샬리스 패밀리로 불리는 미국 재즈의 명문가이다.


 한 집안에서 유명한 재즈 뮤지션이 다섯 사람이 나왔다는 건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음악 하는 사람이 어려운 상황에선 마샬리스 패밀리 같은 가족은 다시 세상에 나타나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엔 신중현 패밀리가 있는 것으로 위안을 삼아야 할까?


재즈와 래퍼가 만나면 재즈랩이 될까? 아니면 랩재즈가 될까?  

 ‘Mo' Better Blues’에서는 재즈 영화답게 많은 재즈 음악이 등장하는데, ‘Mo' Better Blues’를 제외하고 커다란 느낌을 주는 곡은 없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마지막 엔딩 크레딧을 보다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처음 듣는 신선한 음악이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영어를 잘 하진 못해도 노래 중간중간에 들리는 유명 재즈 아티스트의 이름들...! 이것 봐라...여기에 숨어있었구나...하며 곡목을 찾아보니 디제이 프리미어와 브랜포드가 기획하고 갱스터가 함께한 ‘Jazz Thing’이라는 곡이었다.

 

 가사를 찾아보니 역시 내 판단이 맞았다.

빌리 홀리데이로 시작된 가사는 아프리카를 떠나 미국으로 온 흑인들의 고통과 처참한 현실에서 피난처가 되어준 신을 찬양하고, 스캇 조플린, 베씨 스미스, 세인트 루이스 블루스, 킹 올리버, 시카고, 뉴올리언스, 새치모가 나타나고, 비밥시대엔 디지와 버드, 몽크와 찰리 밍거스, 맥스 로치까지 아우른다. 존 콜트레인과 아프로 불루, 지이언트 스텝, 오넷 콜멘, 베티 카터, 니 롤린스를 끝으로 재즈가 젊은 재즈 뮤지션에 의해 지속될 거라는 희망을 담고 있었다.

 

 1990년에는 아직 랩이 대중화 되지 않았을 때인데 재즈 뮤지션이 랩과의 퓨젼을 기획하고 재즈 아티스트를 망라한 가사를 담아 신선한 곡을 만들어냈다는 게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마워요! Spike Lee

  아티스트의 음악과 공연영상, 방송출연영상은 이제 유튜브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으나 실제로 그들의 생활과 무대, 시대적 배경 등의 정보는 글과 사진을 통해서 얻는 방법 밖에 없어서 늘 아쉬웠는데, 재즈뮤지션의 삶을 잘 만든 영화를 통해 조금이나마 생생하게 들여다보게 해준 스파이크 리(Spike Lee)감독에게 감사한다.

 

 스파이크 리는 오래전부터 자신의 각본으로 영화를 만들고 몸소 연기하며 미국의 흑인사회와 미국 사회의 계층 간 갈등을 다양한 시각으로 보여준 감독이다. 어릴 때 애틀랜타에서 뉴욕 브룩클린으로 이주했다는데, 교사였던 어머니와 재즈작곡가였아버지 덕분에 재능도 물려받고 별 탈 없이 유명한 흑인대학까지 다닌 걸 보면 집안 형편은 그리 어렵지 않았던 것 같다.

 

 ‘Mo' Better Blues’에서도 스파이크는 스포츠 도박에 빠진 밴드의 매니저 역으로 출연했다. 밴드에게 돌아갈 개런티를 유용여 밴드의 살림을 어렵게 만드는 상황 끝에 클럽 문지기로 전락하는 모습은 80년대 우리나라에서도 익히 봐왔던 광경이라 설지 않았지만.



진정한 음악은 잠든 것인가?

 2016년의 미국.

아직도 흑백간의 감정이 뜨겁다. 백인 경찰이 비무장 흑인을 사살하고 그 장면을 담은 영상이 실시간으로 사방에 퍼진다. 교에선 학생이 선생님과 학생들에게 자동화기를 난사하는 사건이 거의 매년 일어난다. 사회적으로 소외되었다고 생각하는 층을 교묘히 이용한 정치인이 선거에서 승리하고, 약자의 편에 서서 사회를 개혁하려한 사람들은 다시 뒤로 물러앉는다.


 세계적으로는 종교를 앞세운 테러가 곳곳에서 일어나고 강대국은 테러를 종식한다는 핑계로 무차별 폭격을 하여 민간인을 상한다. 아직도 끼니를 잇지 못하고 의료지원을 받지 못하는 엄청난 숫자의 사람들이 지구 곳곳에 있다.

마이클 무어, 스파이크 리...영화계에서 사회의 정의와 불합리한 사회를 바꾸고자 애쓰는 감독들이다. 우리나라도 근래에 들어 잘못된 사회를 고발하는 영화가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정부의 입김이 작용하여 개봉관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이 많지만 뜻있는 사람들은 그들의 스크린 앞에 꼬박꼬박 달려와서 앉는다. 이에 비해 음악계는 몇몇 뮤지션을 제외하곤 초라할 정도다.

 

 우리나라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세계적인 구호 콘서트... 우드스탁. 방글라데시 콘서트, 라이브 에이드......1960년대부터 이어진 평화운동과 자선 콘서트도 이젠 더 이상 열리지 않는다. 스피릿을 가진 뮤지션은 노쇠하였고 음악시장은 그들에게서 멀어졌다. 젊은 뮤지션들은 디지털의 힘으로 승부하려는 마음이 강하여 아날로그가 가진 정신과 깊이를 애써 무시하며 메인스트림으로만 진출하려 한다.

 

 어쿠스틱이 초라해진 세계의 음악은 사람들을 황폐하게 한다. 파일로 다운 받아 듣는 음악은 뮤지션을 가난하게 한다. 이 모든 것은 사람들을 여유로부터 멀어지게 한 신 자유경제 논리로부터 시작되었다. 음악 한 곡 들을 시간이 없고 책 한 줄 읽을 간이 없는 세상이 앞으로도 계속 된다면 인류의 미래는 어떻게 될지 보지 않아도 뻔하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양심 있고 정의로운 예술가의 역할은 무엇인지 우리 모두 심각하게 생각할 때가 온 것 같다. 자신도 어렵지만 힘없고 음지에서 신음하는 이들을 위해 조용히 애쓰는 분들에게 ‘Mo' Better Blues’를 들려드리고 싶은 밤이다.


* ‘Mo' Better Blues’의 Mo'는 more를 줄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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